- 셀렘을 만나는 순간
▲ (삽화=임중우) |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육필원고 전시회를 다녀왔다.
원고지에 흘려 쓴 글과 덧붙여 빨간색 교정부호까지 첨부된 원본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처음 원고지를 마주하고 원고지 쓰는 법을 배우며 그 한 칸 한 칸 채워가던 설렘. 그 맛은 기쁨이며 한 글자, 한 문장이 살아나면서 글에서 향기가 난다.
필기구로 매끄러운 볼펜보다 연필을 선호하고 그보다 더 좋은 건 플러스 펜. 연필은 처음 깎아 쓸 때는 깔끔하던 것이 쓰면서 점점 굵어져 같은 굵기가 어렵다. 반면 플러스 펜에선 사과 향기가 나면서 써 나가는 촉감이 사각사각 사과 한 입을 베어 먹는 맛이 있다. 그 사각거리는 소리에 글도 따라 가고 향기에 취한다. 똑 같은 굵기로 선명하게 써 내려가는 서체는 만족스럽다.
글씨쓰기도 만만찮다. 괴발개발 흐지부지 써나가는 글은 아무도 알아 볼 수 없어 작가의 아내가 대필 해 주는 작가도 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글씨쓰기를 가르치는 학원도 있고 펜글씨 검정시험도 있었다. 글씨체로 그 사람의 성격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꼼꼼한 글씨체와 달리 마냥 맺음 없이 흘려 쓰기도 하며, 크기와 필압에 따라 그 성품을 짐작해 보곤 했다.
육필원고의 빨간 교정부호에 나온 것 중 단연 띄어쓰기로 체크된 부호가 가장 많다. 필요 없는 것은 돼지꼬리로 표시하며, V(교정부호 띄어쓰기)가 난무하고 이어 붙이기도 하며 줄 옮기기도 하여 현란하다. 다시 읽어 내려갈 때마다 교정부호는 첨부되고, 작가는 탈고의 혼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이젠 컴퓨터 워드에 밀려 글을 문서작성하고 탭 하나 클릭하면 원고지에 알아서 입력되고 출력되어 나온다. 각가지 서체를 다 이용할 수 있고 그야말로 천국이다. 또렷하며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온다. 그뿐인가 맞춤법 검사도 클릭 하나로 알아서 해준다.
디지털 문화에 모든 것이 잠식당하고 있는 지금. 때 아니게 만난 육필원고가 아날로그적이며 사람다운 것, 자연스러운 것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고전이 더 향기롭다.
이제는 묻혀져 간 원고지를 백일장에서 노트로 묶인 원고지 한 권으로 받아 쓸 수 있을 뿐이다.
다시 원고지를 꺼내놓고 컴퓨터에 저장 된 글을 적어본다.
사각사각 플러스 펜으로~~~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