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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송수복 제22회] 눈물의 김장독

기사승인 2021.11.10  1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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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수의 한 벌 얻어 입고 묻힐 것을

[골프타임즈=송수복 시인] 깊어 가는 가을, 주인 없는 텃밭에는 마지막 심어 놓은 무 배추가 무성하게 밭두둑을 덮었습니다. 반겨줄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쌩하니 찬바람만 스쳐갑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가을걷이하다 말고 저승 여행을 떠났나 봅니다.

털고 남은 깨 단이며 고추대들도 밭 귀퉁이에 널브러져서 아직도 주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천년만 년 살 것처럼 곳곳에 남아있는 곰살궂은 흔적들 가슴 에이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것들 못 잊어서 어찌 떠났을까요.

돌아가신 친정어머님이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했던 조카였습니다. 나한테는 외사촌 동생 벌입니다. 1년에 서너 번씩 이곳에서, 사촌끼리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친인척들 언제라도 와서 쉬어가게 해주었고, 텃밭에는 온갖 것 다 심어서 올 때마다 봉지봉지 나눠주곤 하였습니다.

해마다 이곳에 모여서 김장 잔치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소금보다 더 짠 눈물로 절인 배추에 온갖 양념 다 넣고 복받치는 설움 꾹꾹 짜내어 아무리 버무려도 소태 같은 맛입니다. 초겨울 햇살도 토라져 가버릴 것만 같습니다.

크고 작은 김장독은 죄다 나와 서 있는데 있어야 할 그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문득문득 고개를 휘둘러봅니다. 늘 김장하는 날은 잔칫날처럼 흥청망청 웃고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김장독은 잘도 채워지더니만, 올해는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개들만 크렁크렁 짖어댑니다.

소처럼 일만 하고 밭고랑에 서성이다 긴 한숨 내쉬더니 그 길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흙이 좋고 산이 좋아서 낯설고 물 설은 이곳에 와서 십여 년을 공들여 놓고 이제 마음 편히 살만 하다더니 겨우 수의 한 벌 얻어 입고 산자락에 묻힐 것을! 그 또한 고통 없이 가겠다던 살아생전 본인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일궈놓은 텃밭에 마지막 심어 놓은 김장거리들이 보물같이 여겨집니다. 함께한 세월도 켜켜이 물들여서 포기마다 가슴 적시어 수의 여며 입고 곱게 묻힌 그날처럼 행여 한겨울 추울세라 꼭꼭 여며서 김장독에 고이고이 묻어 두었습니다.

시인 송수복
시와수상문학작가회 수석부회장 송수복 시인은 서울시 청소년지도자 문화예술 대상·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수상. 시낭송과 시극 등 다양하게 활동하는 송 시인은 첫 시집 ‘황혼의 숲길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송수복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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