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우월감이 부른 산물...두렵고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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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칩니다. 살갗을 파고들 것 같은 바람의 횡포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묵상에 잠겨 있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열어 달라고 애원하듯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르며 이집 저집 창문을 두들깁니다.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던 날 사랑하는 연인을 애타게 부르다 떠나간 히드클리프처럼 말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새해라고 하지만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엔 우리 앞에 부딪친 현실은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은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종잡을 수 없는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이 모든 흔들림의 원인이 코로나19의 발병에서부터 시작된 불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은 질병과 대립각을 세운지도 햇수로 벌써 4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백신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 휩싸여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보다 더 무서운 변이들이 출몰해 우리들의 단 하나 뿐인 목숨 줄을 위협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빛의 속도보다 빠른 과학문명의 발달에만 치중한 인간의 우월감이 부른 불행의 산물인 것 같아 두렵고 무서워집니다.
생명은 누구나에게 단 한번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선택할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열심히 돌아가는 것이기에 구두쇠 스크루지라 해도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게 시간입니다. 그 아까운 시간들이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어떤 날은 시간이 남아돌아 질실할 것처럼 무료하게 흘러가고, 어떤 날은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스스로 일을 찾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꼬깃꼬깃 접어둔 시간들까지 꺼내어 나만의 과거사를 더듬어 보며 ‘라떼’의 행복을 누려보기도 합니다. 나름 보람의 시간을 가져보려 하지만 부딪치다 깨지고, 어우렁더우렁 엉겨 살 때보다는 현실감의 맛이 덜합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라 하듯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삶의 무늬마저 점점 빛바래져 가는 듯 만사 심드렁해져 갑니다. 꼭 해야 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은 뒤숭숭한 게 심란합니다. 바쁨에 휘몰려 살던 때가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도,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자유를 되찾고 싶은 욕망이 아닐는지요. 욕심을 더 한다면 그 행복한 시간을 냉동시켜 이렇게 힘들 때 해동하여 풀어 쓰면 좋았을 걸 하는 터무니없는 망상에 젖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현실은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살아가는 게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가 위로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늘이 푸르고, 땅을 걷고, 구름이 흘러가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있음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증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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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