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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의 샘터조롱박 70회] 문패 달기

기사승인 2022.02.03  08: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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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며 나며 보는 즐거움도 두 배!

▲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그 동안 잊고 지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로 시작하는 노래도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익숙한 격언도 있다. 새 집으로 이사 준비하며 이것저것 체크 하다 보니 옛날이 생각났다.

60~70년대 판잣집 시절. 지방에서 올라와 내 집 한 칸 마련하면 대문에 문패부터 달아야 완성되는 내 집 마련. 우체부의 편지배달을 원활하게 돕기도 하며 의젓한 내 집이라는 가장의 무게가 실린 문패. 어렵던 시절 산동네 무허가 판잣집에도 붙은 문패. 나무 판에 한자로 새겨 넣으면 그 집이 근사해지고 뿌듯했다. 문패 다는 날은 가족들이 모두 나와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은 문패를 들고 대문 오른쪽 시멘트 벽에 못질을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문패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호적등재와 지번확정, 우편제도를 실시하면서 문패부착이 권장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치안유지 및 체신 업무의 효율화와 한글 상용화 목적으로 문패 달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70년대에는 각급 학교 학생이나 집배원 등이 문패를 만들어 달아주는 봉사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문패를 다는 것은 셋집을 전전하며 고생하다가 드디어 자기 명의의 가옥을 장만하게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도로개혁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어느 때부터 문패는 자취를 감추었다. 아파트 특성상 문패를 다는 의미는 0000호로 통하였고 우편함도 1층에 따로 비치되어 호수에 넣으면 끝이다.

한국 근 현대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벽에 가득 걸린 문패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주인의 이름 석 자가 나무 판이거나 돌 판에 한문이 주를 이루고, 눈에 띄게 부부의 이름이 한글로 나란히 적혀 있는 문패도 있었다. 세로로 오른쪽 끝에 주소를 적어 넣고 호주의 이름을 세로로 새겨 넣었다.

“옳다구나! 그래, 우리 집에도 문패를 달자. 이제 한글 배우는 손자녀석 글씨로 가족들 이름을 적고, 현관문 초인종 옆에 걸어두자. 들며 나며 보는 즐거움도 배요 가족의 소중함도 일깨우니 일거양득 일 터. 문패를 달아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불러줄 이름을 내걸어 이름으로 남고 싶은 소망을 담아본다. 새해, ‘어흥’ 하는 호랑이의 포효 같은 기운이 집안에 가득 차리라!

노경민 작가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노경민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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