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노경민의 샘터조롱박 88회] ‘추성부도’를 만나고나니

기사승인 2022.06.30  09:17:09

공유
default_news_ad1

- 영원한 것은 없는 게 맞다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비가 내렸다.

여름장마가 시작이란다. 밤 내 우르르 쾅쾅거리다가 쏟아 붓기도 하고 잦아들었는가 싶으면 또 시커먼 구름 떼가 몰려와 비를 뿌린다. 가뭄 해소되고 시원스레 내리니 빗속에 나서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달이 아니면 못 보는 ‘추성부도’을 만나러 나섰다.

‘추성부도’는 중국의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보고 김홍도가 그린 시의도(詩意圖)다. 화폭엔 추성부 전문이 김홍도의 자필로 쓰여져 있다. 그 끝부분에 ‘을축년동지후삼일(乙丑年冬至後三日) 단구사(丹邱寫)’라 하여 1805년 김홍도 나이 61세에 제작된 것으로 죽음을 앞두고 그린 마지막 기년작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엔 늦가을 바람이 낙엽을 떨구고 스산함이 가득하다. 빗질하듯 힘없이 쓸어내린 붓질이 애달다. 이 그림은 구양수가 책을 읽다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살피라 했고, 이에 밖으로 나간 동자가 이르기를,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라고 답했다는 그 장면을 그려냈다.

동자는 손을 들어 바람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집에서 기르는 학 두 마리는 목을 빼고 입을 벌려 그 바람소리를 화답하듯 묘사되어 있다. 그림 가득 바람이 불고 대나무 숲 위로 보름달이 교교하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바람은 심술궂고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새싹 돋는 봄인가 하면 잎이 무성해지는 한 여름. 그 여름이 타 들어 가면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찾아 든다. 가을인가 하면 잎 다 떨구고 벌거벗은 겨울이다. 여름문턱에서 만난 늦가을의 ‘추성부도’, 봄에 만났던 겨울의 ‘세한도’. 그 쓸쓸함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정조의 눈에 들어 평생 특별대우를 받다 정조 사망 후 곤궁해져 아들의 교육비를 빌려야 하는 노년의 김홍도, 친구를 그리워하며 소나무 청청함에 고독한 마음을 담았던 김정희. 영원할 수 없는 권력 앞에서 무너지고 모든 것 내려놓아야 하는 노년의 삶.

인생살이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봄에 새싹처럼 태어나 왕성하게 피어나는 청춘이 있었고, 열매 가득 맺어 풍성한 가을이 지나면 바람 불어 다 떨쳐내고 빈 나뭇가지만 남아 스산하다.

영원할 것 없는 그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지금.

나는 ‘추성부도’앞에서 옷깃을 여민다.

노경민 작가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노경민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