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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38회] ‘고마워요’ 그 말이 그립다

기사승인 2022.07.20  08: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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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이 담긴 따뜻하고 감동적인 언어...표현에는 인색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태어나 8개월 정도 손자를 돌봐주었다. 사위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딸과 손자도 함께 나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한 집에 살던 정 때문인지 그 애들을 보내놓고 나니 집안이 텅 빈 것 같은 게 마음이 허전했다. 할미의 짝사랑인지 딸보다도 손자가 더 눈에 밟혔다.

같은 도시 하늘아래에 살아도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을 터, 하물며 아무리 보고 싶다 한들 현해탄 건너 일본을 어찌 자주 드나들 수 있으랴.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라고 하지만 눈앞에서 얼굴마주하며 보고 듣고 안고 만지지를 못하니 그립고 보고픈 마음은 미련처럼 남아 애간장만 더했다.

돌을 지나고부터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는 데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손자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말을 한다고 제 어미는 자랑삼아 말 하고는 전화를 어린것의 귀에 대주고 무슨 말인가를 시키는 듯 했지만 겨우 두세 글자 간신히 제 어미의 말을 따라 할 뿐, 소통이랄 것도 못되었다. 딸아이가 일본어 공부하러 학교 가는 날에는 어린 것을 유아원에 맡긴다고 했다. 집에서는 한국말 하는 아빠와 엄마, 유아원에선 보모에게서 일본말을 배워야 했으니, 이제 막 말문을 트기 시작한 어린것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이듬해 겨울, 나는 손자도 볼 겸 일본을 갔다. 제 어미는 볼일 있다고 나가고 나와 단 둘이 장난감 전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레일 위를 신나게 달리던 전동차가 코너를 돌다 넘어졌다. 전동차를 레일위에 세우고 다시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던 손자는 차가 움직이지 않자 금세라도 울음보가 터질 기세였다. 왜 그런가 싶어 살펴보니 건전지 한 개가 옆으로 삐죽이 빠져나와 있었다. 건전지를 끼워 놓으니 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 다시 신나게 달렸다.

손자가 고맙다는 듯 그 작은 머리를 숙이며 할미인 내게 ‘아또’라고 했다. 고맙다 의미의 일본말로(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아리가도 고자이마스를 그렇게 말하는 듯싶었다. 간식을 주었더니 이번에도 ‘아또’라고 하며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닌가. 아빠, 엄마만 정확한 발음으로 불렀고 할머니는 ‘하미’ 할아버지는 ‘하비’라고 불렀다. 아직은 언어구사력이 미흡하긴 해도 말문이 틔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귀여움의 한도를 초과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에 밥을 먹고 나서도 ‘아또’ 어린것이 귀엽다며 누군가 과자를 줘도 ‘아또’ 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곤 했다. 걸음마를 이제 겨우 면한 어린 것 입에서 엄마라는 말 다음으로 배운 말이 ‘아또’라니... 듣고 들어도 기특한 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발음도 제대로 못하면서 예의를 차리 듯 매번 ‘아또(고맙다)’ 라는 인사를 하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일본의 서비스 정신은 세계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 적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은 습관처럼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아리가도 고자이마스’라는 말을 자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아마도 어린 것 귀에도 그 말이 귀에 익은 듯하다.

고맙다는 말은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사말에 속한다. 진실로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단어인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어른들도 아이들도 ‘고맙다’는 말에 인색한 것은 아닌지. 특히나 가까운 이웃이거나 가족의 친절은 당연한 것으로 아는지 아무리 잘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배우거나 가르치는 데 있어 연령적 제한을 두지 않는다. 세상을 돌아보면 온통 스승 아닌 것이 없듯 어린 아기에게도 배워야 할 건 배워야 할 것 같다. 우리속담에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듯 나 또한 어린 손자를 보며 배우고 깨닫는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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