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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99회] 가을의 전령사는 어디에

기사승인 2022.09.05  0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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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을 밤 베짱이 소리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어느 해부터인지 가을이 되었어도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앉았다. 아무리 귀를 열고 창밖의 어둠을 헤쳐보아도 정말 벌레소리 한 마리 들리지 않았다. 가을 밤 그리고 적막함 속에서 그나마 적요를 달래주던 베짱이들과 여치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리고 다시 가을이 왔다. 이름 모를 야생 꽃들과 강아지풀들이 어우러진 산책길에서 우리집 애견인 푸들 호두와 함께 일주일에 몇 번 산책을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산책을 마칠 때까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지만 요즘은 그냥 걷는다.

냇물 흐르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 자연의 생생한 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베짱이 소리와 여치 소리가 들렸다. 가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 풀벌레가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올해는 가을 초입부터 그 녀석들이 울어주니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처럼 일 년에 한 번 가을에 만나는 감성 충만한 녀석들. 긴긴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전령사처럼 가끔은 창틈에서, 그리고 가끔은 방구석 어딘가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베짱이. 

예전 같으면 시끄럽다고 타박을 주고 내쫓으려 이리저리 파리채를 휘둘렀겠지만 한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그 녀석들이 내심 가출했다 돌아온 것을 반가워할 줄 알았는지 마음껏 밤을 뒤흔들며 가을을 즐기는 모양새다.

추석이 다가오니 가을의 색이 더 짙게 드러난다. 하늘은 더 높아지고 파란색은 더 깊어진다. 괴테는 이 파란색을 가리켜 ‘자아를 가리키는 무無’라고 했다. 스페인과 베네치아의 명사들은 파랑과 검정에 매혹되었고 오늘날 ‘블루 블루디드(blue blooded)’라는 말은 귀족을 뜻하기도 한다.

하늘은 그윽이 높아져 파랑색으로 더욱 절정을 이루며 땅은 새빨간 카드뮴 레드의 유화물감을 칠한 듯 변할 것이다. 그 사이에서 외롭고 긴긴 가을밤을 위하여 사람들은 베짱이 울음소리에 취해 잠이 들 것이다. 찬 이슬이 아침을 몰고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베짱이는 일도 안 하고 나무 그늘과 풀숲에서 악기만 연주하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다.
무너져가는 가을이 외롭거나 슬프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감정과 감성 사이에서 사람들의 심장을 달래주고 있다.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가을 한 철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목소리로 혼탁한 세상을 온통 맑게 해주듯 멋진 연주를 마지막으로 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 과천문인협회 회원,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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