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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43회] 가을 유혹

기사승인 2022.10.26  08: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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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과 생성의 순명이야말로 자연의 이치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도심마다 황홀한 가을 축제를 벌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길고 긴 하천을 따라 도심 속 가을 풍경을 담은 명화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황홀한 빛깔을 채워가며 마지막 화려한 가을 쇼를 펼친다. 시끄럽고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 여유롭고 고즈넉한 가을 길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즈음 나는 가을 물든 길을 찾아다니는 게 내 삶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갈수록 약해지는 몸을 지켜주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지만 영화로운 잎새의 마지막 아쉬운 배웅을 카메라에 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내 몸의 근기에 맞게끔 걷고 나면 몸도 가뿐해지고 일상의 활력소로 작용이 되기도 한다.

가을 날씨는 변덕스럽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금방 겨울이 몰아쳐 들어올 듯 기온이 급강하하더니 오늘 아침부터는 하늘도 푸르고, 햇살도 맑은 정형적인 가을의 평년 기온이 웃돌고 있다. 창밖의 나뭇잎도 시치미 뚝 떼고 화려한 꿈을 꾸듯 화려한 단풍 빛으로 물들어간다.

날씨가 좋아지자 나무와 풀과 꽃들이 혁명 전야처럼 은밀하게 술렁이며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알록달록 색색의 물감을 바른 것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도 전성기를 누린 욕망의 몸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사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남은 것을 남아 있게 마련인 것을. 꽃은 봄을 기다리고, 푸른 젊음은 여름을 기다리고, 풀벌레는 단풍 물든 가을을 기다리고, 묵언정진 하듯 헐벗은 나무는 겨울을 기다린다. 이렇듯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소멸과 생성의 순명(順命)이야말로 자연의 이치가 아니런가.

세월의 속도는 나이 따라 흘러간다는 말이 점점 실감 나게 느껴진다. 세월 따라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세월을 앞에서 잡아당기는 것도 아닌데 정신 차려 한해가 훌쩍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본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고, 여름인가 하면 단풍 물든 가을이고, 가을인가 하면 어느덧 겨울이 내 눈앞에 와있다. 가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도 가을로 접어든 나이 탓이려니. 삶의 덧없음과 생명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막상 모든 걸 두고 떠날 것을 생각하면 자연의 지엄한 분부마저 외면하고 싶어진다. 더 살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 또한 숨 쉬는 생명의 본능인 것을.

맑은 공기를 찾아 굳이 먼 곳까지 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자제 이후, 서로 경쟁을 벌이듯 여기저기 눈 호강을 시켜주는 곳이 많이 생긴 것 같다. ‘건설은 파괴이다’ 라고 하던 시대는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된 듯싶다. 언제부턴가 옛것을 살리면서 새롭게 탄생 되는 도시재생사업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세상이 변해가는 중이다. 시궁창 물이 흐르던 하천이 맑은 물이 흘러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헐벗은 산마다 숲을 이루어 새들을 불러들이고, 서울 시민의 쓰레기로 산을 이룬 난지도가 갈대밭을 이루어 가을명소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머잖아 흐드러지게 피어날 단풍꽃을 기대하며...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총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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