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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인의 마음밭 꽃씨 하나 29회] 무념무상이 되는 날

기사승인 2022.11.22  0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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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만난 굴 덕에

[골프타임즈=이정인 시인] 민낯의 토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호떡이 먹고 싶어집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동네 앞 포장마차에 호떡을 사러 나갔다가 커다란 배낭을 멘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살아온 나이를 가늠케 하는 그녀의 수다와  그림을 그려놓은 듯 한 자연스러운 주름살이 조화롭게 잘 어울렸습니다.

한참 수다를 늘어놓던 그녀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힘들게 캔 것이라며 굴을 사라고 합니다. 먼 길을 돌아온 굴과의 조우가 반갑다고 느껴지면서 바람의 자맥질로부터 내게로 와준 굴을 보니 갑자기 바다로 여행이 하고 싶어집니다.

분주한 날들이지만  1박 2일의 계획 없는 여행을 훌쩍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주섬주섬 짐을 꾸려 집을 나오고 보니 가을 녘의 빈들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가을바람 듬뿍 먹은 노을과 겨울을 준비하는 바다가 고운 풍경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무념무상이 되는 나를 만납니다.

초겨울 들녘에 서 있는 농가 어느 끝에서 마주한 작은 펜션. 노년의 부부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줍니다. 단골손님 같은 멍멍이의 Mosso 풍으로 다가오는 화음이 시골농가임을 확인시켜 주니 더 정겹습니다.

문이 열리고 나의 하루를 풀어놓을 저녁상이 식탁 위에서 인사를 합니다. 편의점에서 구매한 초고추장은 멀건고추장이었음을 알게 되고 주인 어르신께 웃음 한점 꺼내어 주고 고추장으로 바꾸는데 성공을 합니다.

전기밥통에 굴밥을 짓고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습니다. 나만의 방은 잔치가 열리고 라면에 대파를 송송 썰어 주인 어르신이 주신 어린 배춧잎으로 샤브를 만듭니다. 나에게 이런 멋진 여행을 하게 해준 굴이 빠지면 안 되겠지요. 속이 그득 채워지는 밤은 깊어가고 별들이 속히 잠을 청하라는 전갈을 보냅니다.

다음날 아침상를 펴놓고 초겨울이 주는 여운에 라면을 끊이며 몽글거리는 서리에도 작은 기쁨을 느껴봅니다. 아침을 활짝 열어놓으니 마음이 동행 길을 주섬주섬 따라나섭니다. 농가를 지나며 생의 살이들이 빚어 놓은 자연 작품을 만나는 기쁨 또한  마음 가득 부요로 채워집니다.

길섶의 정겨움만큼 동무 삼아 동행해주는 마음에게 수다를 떨어 봅니다. 꿈꾸던 어제에서 빚어놓은 내일은 오늘의 나를 다시 설레이는 심장으로 보여줍니다. 차 안에 서 음악을 활짝 열어놓고 공중 화장실에서 커피 포트에 물을 끓여 봅니다.

혼자 맡아도 좋은 커피 향은 친구가 되고 나는 가장 행복한 여행객이 되어 황홀하게 바다를 만집니다. 언젠가 이런 민낯의 여행을 꿈꾼 적이 있습니다. 걷고 싶은 데로, 먹고 싶은 데로, 눕고 싶은 데로, 그렇게 마음 가는데로, 나 다운 데로 행복해지는 여행을 말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하늘과, 바람과, 공기에 진심어린 감사를 표현합니다.
갑자기 만난 굴을 따라 나만의 여행이 되어버린 날, 다시 또 나의 날들을 신비롭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오늘을 열어 보려 합니다.

시인 이정인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사무국장, 옳고바른마음 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2019년 언론인협회 자랑스러운 교육인상을 수상했다. 칼럼니스트와 시인으로서 문학사랑에도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정인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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