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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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박영희 시인] 오늘은 '못'이라는 글자에 꽂혀서 헤매는 중입니다.
그런대로 담백한 성격이라 크게 맺히는 마음을 갖지 않고, 맺혔다 해도 그것에 연연하지도 않아서 그간 가꿔온 성격에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굵은 못 몇 개가 거리낌도 없이 제 자리인 양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 뭡니까.
낭군과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다가 내 마음에 이런 것이 있는 걸 오래전에 발견해서 그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지워지질 않네... 했더니
지워질 일도 아니고 그것은 당신의 삶 일부분이기에 어느 누가 와서 강제로 지워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말을 해 주네요.
그 말끝에 그럼 그 일들은 그때의 모습 그대로 마음에 평생 걸어 놓고 갈 텐데 이대로도 괜찮으냐.... 물었더니 그래도 된다고 하네요.
마음에 못 자국 몇 개, 걸려 있는 못 몇 개, 갖고 있지 않은 이 없겠지요. 뿌리가 흔들릴 만한 일들이라 저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지우고 뽑아버리고 싶었으나 낭군의 말로 말미암아 몇 개의 일들은 그대로 마음에 걸어 놓고 지우지도 뽑지도 않고 가고자 했던 길 하나를 접은 채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갈 수 없는 길
어릴 때 우리 집 담은 높은 편이었습니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축으로 남겨진 낮은 강담에 걸터앉아
분홍으로 시작한 노을이
진홍으로 물들다 색을 잃고 검기울어
어둠에 쫓겨가는 걸 보던 시간을
참 좋아했었지요
지금은 소박한 시골집 안마당에
과실수 몇 주와 야생화나 잔뜩 심어 놓고
앞 담이나 허물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땅끝은 아니지만
먼 고흥 바닷가 마을에서 데려온 삽사리에겐
'돌짱' 문패도 새로 달아주고
'개 조심' 문구 단 집도 새로 지어 주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똑 닮은 너른 평상에 앉아
들풀 냄새 맡으며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는 일
그런 모습으로 저물어 갔으면 하는 일
생각만 하다
바람 한 점 불어 입 떼어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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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영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디지털 삽화가, 칼라맨, 캘리그라퍼. 출판편집 디자인 팀 ‘지소사’의 팀장, 시와수상문학 운영위원장으로 문학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박영희 시인은 필명 ‘지소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우연처럼 뜬금없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