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는 날
너에게 취하는 날
바람에 담기고
노을에 젖어서
불그레 취해 버렸다
네가 내게로 온 날
사랑에 취하고
기쁨에 겨워서
발그레 웃어 버렸다
붉게 더 붉게 취하는 날
-신희목 시인 [취하는 날] 전문-
[생각 하나]
처음엔 모든 언어는 속을 보이지 않고 명사(名詞)로 다가오지. 그러다 바람에 담기고 노을에도 젖으면서 소위 말해서 세상 물정 알면서 그 언어는 동사(動詞)로 변하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되는 게 보통 사람들이지. 동사는 굳은 프레임이나 궤짝에 넣어 잠가놓은 게 아니라 문을 열고 나와 살아 움직이는 것이지. 나도 힘겹게 편승하면서 움직여야 잡을 수 있지. 어쨌든 너에게 취하는 날이었어. 이건 명사(名詞) 영역이겠지?
바람에 담기고 노을에 젖어서 불그레 취해버리는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신희목 시인의 시편을 보면 항시 간을 보듯 상대의 눈치를 보고, 상대가 먼저 와 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심상이 주류를 이룬다. 자기가 동적으로 나서서 쟁취하기보다는 상대를 물들이지 못하고 항시 기다리고 있는 여린 감정이 수북하다. 정서적 나약함일까. 그만치 과감하게 부딪히지 못하는 부정적인 요인이 많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혼연일체가 되어 취하는 것은 상반된 두 세계의 합일이 아닐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를 꽃이라 불러줘야 그는 내게로 와서 비로소 꽃이 됐다는 김춘수의 능동성이 필요하다. 더 이상 봄을 기다리면서 빙폭의 눈물에 빠져 있지 말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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