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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묵향에 기대어선 하루 2회]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마라토너

기사승인 2024.02.18  09: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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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잊지 못할 사내 마라톤 사내

▲ (삽화=박소향)

[골프타임즈=김효진 작가] 마라톤 고(考)                                        한강 수변 고수 부지가 아름답게 조성, 정비 되어 시민들 휴식 공간으로 꾸며진 뒤 제일 먼저 자전거 도로와 산책길이 생겼다. 때마침 시작된 4대강 유역 개발로 이어지며 전국적인 자전거와 마라톤 붐이 일었다. 더구나 유명 언론사와 각 지자체는 국제 대회 규모급의 마라톤 대회를 저마다 개최하니 전국은 바야흐로 마라톤 대회 천국이 되었다.

지난 겨울부터 갑자기 무릎 관절 통증이 더 심해지더니  지금은 걸어 다니기도 거북하다. 사실 그 전에도 뜀박질 보다는 주로 관람하는 축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시골 운동회의 학년 별 선수로 뽑혀 백군 릴레이 선수로 뛰었었다. 먼저 뛴 우리 선수가 뒤쳐진 거리를 다시 역전해서 백군이 이기면, 한동안 학교 안의 소영웅이 된 적도 있었다.

군 복무 시절에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보안 교육대의 매일 오후 일과인 8키로 구보도 거뜬히 해 냈지만,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과중한 업무와 술, 담배 그리고 점차 늘어난 체중으로 뛰는 것은커녕 걸어 다니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유난히 체육 행사를 좋아하던 관리 본부장이 전 사원 종목별 경기는 물론, 전 사원 직급별 마라톤 경기를 하여 기록까지 유지하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분은 우리 회사가 초창기 성장 모드를 끝까지 유지하려면, 관리는 물론 사무직 사원들의 건강과 체력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계속 주장하며 이 행사를 밀어붙였다. 더구나 그 분의 직할 부서 인사부 부장인 나는 그 운명의 날을 속절 없이 맞이해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햇볕은 뜨거웠고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현장직 희망자와 5․6급 직원은 20km, 4급 대리급은 15km, 과장, 차장급은 10km, 부장, 임원 중 희망자는 5km를 뛰었다. 나는 사내 운동장을 출발하여 정문 도로로 나가 인근 염포동에 있는 고려화학 정문에서 반환점 확인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제일 짧은 5km를 뛰게 되었다.

출발점에 섰을 때
''아, 오늘은 얼마나 망신 살이를 뻗힐까?'' 하는 걱정 뿐 이었다. 드디어 출발하여 정문까지 400m까지는 제법 선두 그룹에서 뛰었으나 거기까지 뿐이었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숨이 턱턱 조이고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한 명, 두 명 뒷사람에게 양보하며 도로 갓길로 비켜서서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가 아예 걷기 시작했다. 그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야 천천히 걸어가자''며 나와 유일하게 꼴찌를 다투는 개발부 이 부장이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저 멀리 앞서 가는 선수 행렬을 바라보며 그 때부터는 걷기를 시작했다. 아직도 까마득히 먼 반환점까지 짧은 선수용 반바지만 입고 도로를 걷자니, 지나가는 버스와  차량들이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아서 아예 인도로 올라가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는 선두와 마주쳤지만 손을 들어 웃어준 뒤 계속 걷던 그 때, 누군가 뒤에서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개발부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제 부서장인 이 부장을 뒷 좌석에 냉큼 태우고는 가 버렸다.  어쩔수 없이 혼자서는 반환점까지 갈 용기도 나지 않고 해서 즉시 발길을 돌려 회사로 향했다. 한참을 혼자 걷다보니 급히 정차하는 차량에서 낯 익은 총무부 직원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반환점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철수하는 중'' 이라며 내 팔뚝에도 큼직한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선수들이 다 회사로 귀환했는데 혼자서 처량하게 뛰기도 그렇고 해서 나는 그냥 내쳐 걸었다.
다시 정문에 도착한 뒤 멀리서 보니 이미 운동장 쪽은 파장 분위기로 해산 중이었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와서 씻고는 퇴근을 해 버렸다.

이튿날 출근을 하니 예상대로 본부장실의 호출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각오 한 바가 있기에 뻔뻔하게 들어가니, 예상대로 본부장은 ''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행사에 모범은 보이지 못하고 마지막 골인점까지 반환을 안 했냐''고 질책을 늘어놨다. 한참 묵묵히 듣고 난 뒤 이 행사의 목적이 도대체 뭐냐고 대들듯이 내가 묻자 그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예의 그 관리직의 치열한 목표 달성 의식 고취와 건강을 바탕으로 한 체력 단련 아니냐고 말하였다.

제가 보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 달성에만 급급한 비양심적 사원만 양성하는 걸로 비쳐진다고 말하고 어제 일을 얘기 했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도중에 부하 직원의 자전거를 심지어는 택시를 타고 오는 마라톤을 왜 하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반환점 도장은 받고 왔지만, 너무 늦어 본부장님 얼굴에 먹칠할까 두려워 그냥 퇴근 했노라고 한 뒤에 나와 버렸다.

엉뚱하게 행사 주관 부서인 총무부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행사 진행을 어떻게 했기에 선수들이 택시와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도 모르고 있냐고 난리가 났다. 각 부서마다 확인하며 묻고 다니는 총무부 직원을 보며, 시침 뚝떼고 ''어떤 놈이 고약한 짓을 했냐''고 맞장구치면서 빙긋이 웃고 말았다.

그 소동이 있고 난 뒤 한동안은 관리직 마라톤은 더 이상 실시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 때 자전거를 타고 들어온 이 부장이 나를 찾아와 자기 이름을 댔냐고 묻던 노란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제일 고독하고 힘든 사람이 마라토너라고 생각한다. 42.195km 정규 코스이든, 하프 코스이든, 힘들기는 매 한가지 아닌가.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힘과 체력으로만 그 긴 코스를 완주하고 오는 마라토너는 아름답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시인, 수필가 김효진
시와수상문학 시와 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꾸준한 문학 사랑으로 많은 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저서 사집 ‘새벽 별을 걸고’ 2023년 제1회 정병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효진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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