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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4회] 환절기 앓이

기사승인 2024.02.23  09: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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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의 사연들을 생각하며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때

▲ (삽화=박소향)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안개가 짙을수록 날씨는 화창하다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했던 가을날의 새벽은 출근 준비로 바쁜 시간을 감상에 빠트렸습니다.

창밖의 하늘은 푸른 정기가 감돌고, 지상을 덮은 구름은 선계로 가는 길처럼 신비로웠습니다.
순간 신선이 된 듯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던 나의 상상은, 곧바로 안개의 행간에 잘못 뛰어든 이방인처럼 행복을 즐기기엔 늦가을의 낱말들이 모호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37층에서 신선의 구름을 보았지만, 예전에는 창문 위를 지나치는 발걸음과 승용차를 바라보며 먹구름 속에서 허우적거린 적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시련이나 외부와의 단절로 덜컥 암흑 속으로 가라앉는 긴 여정을 겪기도 하지만, 햇빛이 없다고 느끼던 날에도 안개와 구름 뒤엔 변함없는 태양이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세월은 빠른가 하다가도 먹구름 앞에서는 더디 흐르던 마술의 시간처럼 지나간 일들은 아픈 기억조차 담담한 추억의 향기 몇 줌을 건네기도 합니다.

시련의 끝에 즐거움이 있다는 말처럼 계절을 넘어온 구름들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 우리의 내일이 어떤 모습의 구름으로 배달될지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을 주기 때문일 겁니다.

37층 높이 아파트에서 구름 위를 걸었듯 아직은 구름이 되지 못한 안개의 사연들을 생각하며,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환절기 

일교차가 다녀간 새벽
저 흰 무리들은 불면의 자객이었을까
창과 밖의 거리는 지워지고
구름 위 하늘만 푸르다

몇 개의 아파트와 건너편 숲이
흰 통증 속에서 벗어나고
무겁게 멈춰있던 은행나무 잎들이
노란 전설을 찾지 못한 채
하나씩의 가로등을 풀어 주고 있다

순간 내가 신선인 듯 몽환의 길에 든다
불면으로 휘청이던 새벽
구름 속 37층은 공중부양 중이다

어둠은 그늘조차 파종할 수 없는 것
달빛에 감긴 간밤 꿈이
계절을 염탐한 안개와 함께 가로등 안으로 사라진다
더 깊은 곳으로의 은신과 묵정의 날들을 견디는 동안
1층에서 37층을 오르던 세월의 간극도 사라졌다

안개 속에서 여름날의 단서를 찾는 동안
태양은 때늦은 나의 독백을
공중으로 밀어내고
창밖 풍경을 말끔히 펼쳐놓는다

태양의 울타리 안에서 서성이면서
스스로에겐 보이지 않는 오랜 불청객
나는 침묵으로 더 깊이 은신해야 할
하얀 충고 속으로 잠행하는 안개다

시인 김영미
2003년 문예사조에 시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기 광주지회 9대 지부 회장 역임, 시와수상문학 감사. 시집으로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버린다’ 착각의시학 제1회 시끌리오 문학상, 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순암 문학상을 받았다.


김영미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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