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박소향) |
양철 지붕 위 고양이
공복의 날을 살뜰하게 채워주며
윤기 나도록 빗질과 마사지로
내 기분을 살피던 집사는
뛰놀던 내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
제 의무를 잊은 지 오래다
적막한 집안을 음울히 누비다
내 등을 쓰다듬던 손길이 그리워질 무렵
햇살과 바람만 넘나들던 툇마루가
번잡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때론 구급차 소리가 나를 구석으로 내몰곤 한다
이젠 내 끼니조차 챙겨주질 않고
거품으로 씻겨주던 향그런 목욕도 멈춘 지 오래다
나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궁벽한 오후를 가로질러
지붕으로 향한다
길들어진 집안에서의 기억들과
누워만 있는 집사의 게으른 시선을 붙잡고
몇 번의 망설임과 두려움의 경계를 맴돌았지만
이젠 저 벽을 넘어야 한다
한여름을 달구던 양철지붕의 뙤약볕보다
내 발길을 더디게 붙잡는
저 집사와의 추억이 뜨거워
나는 오늘도 지붕을 건너지 못한다
[시작 메모]
‘유모차’보다는 ‘개모차’ 판매 실적이 더 높다는 요즘,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독거노인 가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공영방송에서도 반려동물에 관련한 프로그램이 인기몰이 중이다.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개탄할 게 아니라 아기를 낳고 싶은 환경적인 정책도 중요하다. 방송에서도 출산정책에 대한 좀 더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해주길 바라는 맘이다.
나 홀로 가구가 늘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면서 동물이 사람보다 존중받는 현실. 사람이 반려동물의 노예처럼 보인다면 너무 과대망상적인 표현일까?
역설해보면 거부감처럼 미스터리한 것도 없겠지만, 넓은 생각으로 빗장을 열면 벽은 사라진다.
고양이를 8월의 첫 프롤로그로 설정하면서 시가 흐르는 마음에 경계 안의 욕망과 경계 밖의 욕망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내가 고양이라면 더 나은 세계를 향해 양철지붕의 벽을 넘어갈 수 있을까? 8월은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생각이 스며들도록 뜨거운 계절 속으로 함께 달궈 볼까요.
시인 김영미는
2003년 문예사조에 시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기 광주지회 9대 지부 회장 역임, 시와수상문학 감사. 시집으로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버린다’ 착각의시학 제1회 시끌리오 문학상, 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순암 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