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사의 기로에서도 빠져 살던 회사 일
▲ (삽화=박소향) |
[골프타임즈=김효진 작가] 어느 날 같이 지내던 큰 사위에게 말했다.
''자네 호랑이가 토끼를 잡는 사냥을 할 때 몇 %의 힘을 쓰는지 아는가?'' 하고 물으니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호랑이는 토끼 사냥을 할 때, 여러 전문 학자나 전문가에 의하면 약 70%의 공력을 쓴다고 한다.
엄청난 완력의 차이 임에도 최선을 다 한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왜 2~30%의 힘을 남기는지는 설명이 없었다.
그래서 다 설명을 한 뒤 나머지 공력은 네 가족, 네 미래를 위해 항상 비축해 두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는 뜻이라며 얘기를 마쳤다.
다행히 그가 종사하는 업종은 나와는 전혀 다른 IT업종이라 항상 여유가 있고 근무 여건도 상당히 여유로운 편이다. 1980년대 중반 내가 대리를 맡았을 때 일이다.
한창 한국의 수출이 고도로 성장함에 따라 회사의 주종 상품이었던 스틸 드라이 카고 컨테이너(steel dry cargo container)도 주문이 밀려들었다. 주, 야간 풀 작업에 매주 주말은 특근과 철야 작업이 상시로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회사 설립 이후 한창 사세를 키워나가던 시절이라,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늘어나고 규모도 늘어나며 큰 성장세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공기가 싸해지더니 담당인 S 과장이 나를 따로 불러 오늘 밤 철야 작업 준비를 지시 했다.
영문도 모른 채 퇴근 시간 전에 이것 저것 자료를 뽑아서 야간 작업에 들어갔다.
검토 작업의 내용은 전혀 상황과 맞지 않는 현재 생산 능력을 대폭 축소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미리 검토하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1,2공장에 설치 된 8개 생산 라인을 어떻게 조율하여 생산량을 적절하게 배분하느냐...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은 극대화로 유지하며, 과잉생산으로 인한 경영 압박이 없도록 최적의 방안을 짜느냐가 목표 였다.
초저녁 부터 시작 된 작업은 자정까지 해도 절반도 끝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울산에 하나 뿐인 관광호텔로 옮겨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잠시 눈만 붙였다가 출근 하자마자 바로 위에 보고를 했다. 오전 중 비행기로 서울 본사로 올라가 사장과 주요 임원들 연석회의에서 보고를 하였다.
예상 했던 대로 특별한 대안 없이 닥친 상황에 사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도 혼란스런 얼굴이었다. 최적의 대안을 좀 더 찾아보자는 결론 없는 결과로 회의가 끝이 났다.
그 뒤로부터 계속 지령이 내려 왔다. 현재 보유한 최대(MAX CAPA)에서 최소(MIN CAPA)까지, 오르락내리락 생산 라인 운영을 이랬다저랬다 하며 사람을 들볶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컴퓨터가 도입 되기 전이니 본사 지령에 따라 거의 매 번 밤을 새워 작업을 한 뒤, 비행기로 서울에 가서 보고 후 회의하고를 반복했다.
울산에 오가는 날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반복 되다가, 한 달이 지나자 드디어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새벽녘에야 잠시 눈 붙였다가 낮에 급한 업무 를 처리하고 퇴근 한 뒤 잠자리에만 들면 몸이 와들와들 떨리면서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병원에 가도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다 했다.
하루는 의사가 혈액검사 결과지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당장 입원하라고 성화를 해댔다. 다행히 의사가 담당 과장의 사촌형 인지라 곧바로 통화를 했다. 그 후 위중 정도는 이해가 되어 이튿날 곧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평생 처음 입원 해 보는 입원 이었다. 다행히 처음만 본사 출장을 간 뒤 다음부턴 실장, 과장이 순차로 갔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 이었다.
특별히 어느 기관이 나빠서가 아니고 면역력 저하와 무리한 근무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있던 것이다. 아침부터 계속 링거만 교체하며 꼽고 지내는 일주일간의 입원이 끝났다. 회사도 나름 정리가 되어 대대적인 생산 라인 재편도 계속 진행이 되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보편화 되어 있었다면 몇 개의 고정적인 퍼즐로 이리저리 맞춰 보면 될 일을 어렵게 계산기와 수기로 차트를 만들어 서울로 오르내린 일은 지금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후일 전해들은 얘기로는 그 소동 중에 일하다가 쓰러져 입원한 울산 공장의 일꾼으로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내게는 엄청난 경험과 어려움이 있었던 일화 이다.
나는 정녕 워크 홀릭 환자 였을까. 의사들이 쉽게 진단할 수 없었는데 애매한 최종 진단이 불명열이라 했다. 즉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란 뜻이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겁도 없이 젊은 날에 과로사라는 죽음의 문턱을 밟다가 돌아온 것이다. 아찔했던 생사의 기로에서도 일에 빠져 살던 그 때가 나이 든 지금 행복한 비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작가 김효진은
시와수상문학 시와 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꾸준한 문학 사랑으로 많은 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저서 사집 ‘새벽 별을 걸고’ 2023년 제1회 정병국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