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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묵향에 기대어선 하루 15회] 이이제이(以夷制夷)

기사승인 2024.09.15  09: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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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는 세상이 무섭지 않을 때도 있었다

▲ (삽화=박소향)

[골프타임즈=김효진 작가] 이이제이(以夷制夷)는 중국의 고사 성어로  오랑캐를 오랑캐로 무찌른다는 군사 외교적인 병술이다.

1990년 전후의 일이다. 내가 속한  00정공(현 현대MOBIS 전신)은 한창 회사 창립시기를 벗어나 1차 회사 성장기에 돌입하여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 이전 1987년에 발생했던 전대미문의 극심한 노사분규는 해결 하지 못하고, 그저 겨우 봉합만 한 채로 해를 보내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개인 적으로는 내 삶의 최고조 노력으로 담당하는 일에 몰두하여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성가를 날리던 시절이었다. 지금 되돌아 봐도 그렇다.

그러던 어느날 가까이 지내던 동료가 공장 내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관리 본부장이 나를 지목하여 관리본부로 끌고 갈 요량으로 말을 하더란 얘기를 전해 주었다.
턱도  없는 얘기라고 치부하고 지나 갔는데 덜컥 명령이 나고 말았다.  아연 실색한 나는 길길이 뛰며 거부를 했다.

부서장도 어쩌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내 직속 상관인 차장을 불러 엄청나게 혼을 내었다. 건강도 안 좋은 사람을 잡을 듯하여 어쩔 수 없이 갔더니 별말 없이 받아주었다.

발령지인 장생포 공장에 노무과장 자리 였으나 별 할 일도 없이 한달이 지나갔다.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당시 이면지 사용을 권장하던 터라 전산용 훌스 캅지를 한묶음 가져와 붓 펜으로 차트 쓰듯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노사분규의 내용 분석과 우리의 대응이 너무 저차원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냥 그들의 투쟁에 대중적인 임시 방편에만 급급하다보니 천편일률적인 대응방안은 이미 그들의 속셈 파악에 거덜 난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 대책을 세워 미래지향 적으로  대응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제법 구체적인 제시를 하다 보니 표지를 포함 거의 30쪽에 달하는 대형 보고서가 작성 되었다.

그 때 내세운 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즉 노조의 극렬 분자에게 치명적인 반대파를 조직하여 힘을 약화시킨다는 작전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이름도 거창한 한울림회 였다. 크게 한목소리로 울린다는 뜻으로 출범했다. 한 달에 두세번 씩 노조 간부의 실책과 노조활동의 비효율성을 매섭게 지적하고 비판하니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노동 운동의 활동 범주가 주로 특정 지역 출신의 전유물인양 되어버린 것과,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낱낱이 까발리고 비판했다. 도대체 누가 쓰는지도 모르고 망치에 두들겨 맞은 듯 노조에서는 난리가 났다.

처음 시작 할 때는 고작 이삼십명으로 시작한 한울림회 도 시간이 지나자 급기야 이삼백명의 규모로 늘어났다. 상당한 발언권을 확보하여 제법 노조의 돌출적인 행동을 견제하는 훌륭한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자 본부장 주변의 아부꾼들이 마치 자기가 그 모임의 뒷배라도 되는 양 너스레를 떨었다. 본부장과 나만 아는 터라 웃음을 참지 못했었다,

옛말에도 보안을 유지 하려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속이고 감추려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까지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사실이다.

그 이후 나도 그들도 서로 헤어졌지만 한 때 의기투합하여 밤을 낮삼아 뛰던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다. 후일 당시 그일을 되집어 들으니 내 초기 보고서가 당시 귀한 FAX로 본사에 올라가 너도나도 돌려보는 인기물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보고서 덕분인지 나를 포함한 몇사람이 그 당시는 드물게 특진 사례가 있기도 했다.
오래 전 얘기지만 지금도 생생한 그 일들이 마치 전설처럼 나이를 따라다니고 있다.

작가 김효진
시와수상문학 시와 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꾸준한 문학 사랑으로 많은 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저서 사집 ‘새벽 별을 걸고’ 2023년 제1회 정병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효진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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