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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재발견13 : 스폰서 명칭 국내 오픈 대회(2)

기사승인 2014.02.06  11: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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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남오픈골프선수권대회 - 두 번째 민간 기업 대회

오란씨오픈골프대회와 함께 쾌남오픈골프대회도 민간 기업이 주최한 골프대회로 쌍두마차를 형성 골프 발전위해 노력하며 1979년 대회부터 여자부 신설


사진=쾌남오픈골프대회 사진 왼쪽부터 6회 대회(1982, 레이크우드CC) 우승자 한장상, 10회 대회(1986, 레이크우드CC) 우승자 최상호, 한명현 그리고 14회 대회 (1990, 88CC) 우승자 봉태화.[사진제공=KPGA]

쾌남오픈골프선수권대회(1977~1990)
남성화장품 쾌남을 신제품으로 출시하면서 스포츠마케팅의 개념을 도입해 대회 명칭도 쾌남오픈대회로 교체

[골프타임즈=문정호 기자] 쾌남오픈골프선수권대회(19771019~22, 총상금 150만원)는 태평양화학공업() 주최로 로얄CC(, 레이크우드CC)에서 프로 49, 아마추어 32명이 출전한 가운데 대회가 열렸다. 스폰서 대회 중 두 번째로 창설된 골프 대회였다.

창설될 당시의 대회 명칭은 바이더스오픈골프선수권대회였으나 이듬해인 1978년에 남성화장품 쾌남을 신제품으로 출시하면서 스포츠마케팅의 개념을 도입해 제2대회부터 쾌남오픈골프선수권대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 대회는 오란씨오픈골프선수권대회와 함께 민간 기업이 주최한 골프대회로 쌍두마차를 형성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1979년에 열린 3회 대회(서울CC)부터 여자 프로부까지 신설해 참가 대상을 확대시키고 총상금도 330만원으로 증액했다. 우승 상금은 60만원이었다.

여자부에서는 구옥희(故人)가 우승했다. 구옥희는 19804, 19815회 대회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하며 연속 3연승을 챙겼다.

198812회 대회를 개최키로 한 한인CC(, 태광CC)이 매각됨에 따라 개최 장소를 잡지 못해서 한때 무산 위기를 맞았지만 프라자CC에서 어렵게 치러지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198913회 대회는 총상금 규모를 1억원으로 증액했다. 이 대회에서 김종덕이 4라운드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우승을 차지해 2천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그러나 1990년 회사 사정으로 인해 제14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한국 프로골프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19793회 대회는 10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발생으로 최종일 경기가 취소되는 어려움도 함께했다.

대회 초대 우승자는 오형제 프로골퍼의 맏형인 김석봉으로 4라운드 합계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하면서 2위인 박정웅을 5타 차로 여유있게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은 최상호가 4회 대회를 비롯해 8, 9, 10회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4승을 기록해 1980년대 최고의 스타임을 입증했다. 이밖에 한장상과 박남신은 각각 2승을 올렸다.

대회 우승자는 박정웅, 김종덕, 봉태하 등 총 9명인데 19793회 대회 우승자 안영수는 행운의 1승을 기록했다. 안영수는 3라운드(19791026)까지 10언더파 206타를 기록하면서 선두에 나서 최종일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이 발생돼 최종일 경기가 취소되면서 대회 요강에 따라 3라운드까지 거둔 성적으로 우승자를 가리게 됨에 따라 우승을 차지했다.

안영수는 이날 영광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온 국민과 나라는 비운을 겪었다.

또한 이 대회는 골프대회 사상 최고의 역전 기록을 갖고 있다. 1990년에 88CC의 동코스에서 열린 14회 대회에서 봉태하는 최광수와 연장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벌인 끝에 무려 8타 차의 역전드라마를 연출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3라운드까지 봉태하가 8오버파 224, 최광수는 이븐파 216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종일 경기에서 봉태하는 4언더파 68타를 기록한 반면 최광수는 4오버파 76타를 기록해 4라운드 합계 4오버파 292타로 동타를 기록하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88골프장 동코스 1번 홀에서 열린 첫번째 연장전에서 봉태하는 파를 기록한 반면 최광수는 보기를 범하면서 최고의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이날 최광수는 3라운드 경기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중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 결과 최종일 경기에서 부진한 플레이를 펼친 것이 뼈아픈 패배로 이어졌다.

이밖의 연장전은 1988년 프라자CC에서 열린 12회 대회에서 박남신은 정도만과 함께 4라운드 합계 1오버파 289타로 동타를 기록한 후 연장전을 펼친 끝에 정도만을 제치고 우승하면서 2연패를 달성했다.

쾌남오픈 대회는 로얄CC에서 원년 대회를 치른 후 7회를 개최됐으며 용인CC(, 양지파인CC)88CC에서 각각 2회의 대회를 치렀으며 부평시사이드CC(, 인천국제CC), 덕평CC, 프라자CC 타이거 코스에서 한번씩 대회가 열렸다.

쾌남오픈 대회의 역대 최저 타수 우승 기록은 최상호가 1985년 로얄CC에서 열린 9회 대회에서 기록한 4라운드 합계 14언더파 274타이며 18홀 최저 타수 기록은 김승학이 1980년 로얄CC에서 개최된 4회 대회 2라운드에서 기록한 7언더파65, 홍영표도 184년 용인CC에서 열린 8회 대회 1라운드에서 기록했다.

문정호 기자karam@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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