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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의 문화 단상] 상례이야기, 문상객 배려 무시하는 ‘핸드폰 부고문자’ 꼴볼견

기사승인 2016.09.26  0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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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한 태도가 문상예법의 본질

▲ 한, 일, 대만 3국 공영TV방송 합작 다큐멘터리 KBS스페셜 ‘유교, 2500년의 여행 제3편 예(禮) 신비로운 힘’ 중에서 한양에서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정식으로 친구 이첨지의 부고장을 받는 평양선비 황순승(사진출처=KBS 화면 캡처)

문상을 빌미로 인맥을 관리하는 사교의 장, 휴대폰 부고문자 밑 계좌번호는 세금독촉장 같아 애도의 마음 씁쓸해...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모처럼 청명한 날이 이어집니다. 팔을 뻗으면 손이 닿을 듯이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고 구름 또한 선명한 형태로 떠돕니다. 다만 기온의 일교차가 심해 출근길에 옷을 골라 입기가 어렵습니다. 결혼식 청첩정이 쇄도할 가절(佳節)이건만, 환절기라서 그런지 노인어른들의 부고장이 오히려 많이 당도합니다. 오늘은 상례(喪禮)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중기에 평양에 살던 선비 황순승(1652~1718)이 볼일이 있어 한양에 들렀다가 우연히 친구 이첨지의 부음(訃音)을 들었습니다. 절친한 벗의 별세 소식을 접한 선비 황순승은 바로 문상을 하지 않고 평양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부고장을 받고서야 의관을 정제하고 다시 한양으로 올라와 문상을 하였습니다.

일반인의 상식이라면 한양에 간 김에 겸사로 곧장 문상을 가겠지만 선비 황순승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고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겼습니다. 외관상 형식적으로 보이지만 선비 황순승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문상예법의 본질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달포 전에 고모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어 임종을 지키지 못해 더욱 슬펐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상주인 사촌동생이 경황 중에도 의연하게 대처해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만 여형제가 없는 외아들이라 상례 치를 일손이 크게 딸려 우선 필자는 부조금을 받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부조금을 접수하는 자리가 빈소 입구라 상주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주가 혼자이다 보니 매우 바빴습니다. 빈소로 들어오는 문상객을 맞으랴, 문상을 마친 손님 곁에 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랴 몸이 한 개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딱한 모습을 보다 못한 필자의 동생이 상복을 차려입고 같이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을 맞이했습니다.

필자로선 여러 가지 상념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집안어른의 초상을 치르는 기간 동안 상주들이 줄곧 빈소를 지키고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상주는 5일장 내내 제자리에서 빈소 지키기는 물론이고 곡기조차 일절 끊고 가끔 국물만 조금 입에 적시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역시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 죄인이라 슬픔이 더욱 크다는 표현이자 자신을 낮추고 망자를 애도하는 상례의 본질을 나타내는 문화였습니다.

요즘은 3일장이 보편화되었지만 빈소를 제대로 지키는 상주를 거의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법 꽤나 따지며 행세하는 집안의 초상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상주가 수시로 빈소와 문상객 식사장소를 오가는 모습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상주가 문상객과 어울러 접대에 신경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상례에는 슬픔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상주가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풍토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논어』의 「학이(學而)」편에 “신종추원(愼終追遠)”이란 말이 나옵니다. 부모님의 인생마감 곧 상례와 장례를 예법에 맞게 정성껏 잘 모시고 비록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란 존재의 근원인 조상의 은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역시 정성껏 잘 모시라는 뜻입니다.

공자의 중심사상 “인(仁)”을 실천하는 첫 걸음이 바로 부모님에 대한 효(孝)이며, 효는 생전의 봉양과 함께 사후의 상장(喪葬)과 제사가 핵심내용을 이룹니다. 제사는 오늘날 종교에 따라 조상 추모의 방식이 다르므로 논외로 돌리더라도, 상례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논어』의 「팔일(八佾)」편에서 공자는 “상례는 예의절차가 매끄럽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함이 낫다”고 역설했습니다. 상례에서 장례까지 상조회사가 대행하여 예의절차에 아무리 하자가 없더라도 상주가 문상객 접대하느라 바빠 망자를 추념하고 애도할 겨를 없다면 이는 상례의 본질이 주객전도 된 것입니다.

맹자는 모친이 돌아가시자 장례를 대부(大夫)의 예법에 맞는 관곽(棺槨)과 수의(壽衣)를 마련해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이를 두고 맹자 당대에도 모친의 장례가 부친의 장례를 뛰어 넘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후대에 와서도 두고두고 맹자 비판자의 시빗거리가 되었습니다.

세 살 때 맹자의 부친이 별세하여 맹자가 상례를 주도할 형편이 못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상례는 조심하고 근신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돌아가신 부모에게 최고급 안동포수의를 입히고 번듯하게 리무진 장의차에 태워 장지로 모시더라도 상주의 얼굴에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면 장례를 잘 치르고도 제2의 맹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겸손한 태도가 예법의 본질입니다. 이번 주는 기꺼이 남을 배려하는 예양의 정신이 몸에 배이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상갓집에 가서는 상주가 빈소를 지키느라 문상객에 따로 찾아가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이해하길 바랍니다. 문상을 빌미로 인맥을 관리하는 사교의 장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리고 사족(蛇足)이지만, 제발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부고문자 밑에 계좌번호 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세금독촉장 같아 역시 애도의 마음을 가시게 합니다. 문상객을 배려하는 예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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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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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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