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정병국 性풍자 콩트 제20화] 스물한 살의 완벽한 변신

기사승인 2016.10.18  10:30:36

공유
default_news_ad1

- 그는 때때로 휘청거렸다.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미스 서의 메이크업 감각은 정말 놀라워. 나 지금 질투하고 있어.”

아영은 오지혜의 칭찬에 살짝 웃었다. 오지헤는 서른네 살의 이혼녀였다. 강남의 한 웨딩 홀에서 피부관리사이자 미용사로 일하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피부 관리와 메이크업을 배우고 있었다. 오늘이 한 달 보름째로 마지막 날이었다.

“머리 손질이 잘 안 돼요. 아예 짧게 자를까 봐요.”

아영은 심각하게 말했다.

“아냐. 괜찮아. 어떤 메이크업에도 섹시한 머리야.”

오지혜가 정색했다.

아영은 긴 머리카락을 목 뒤에서부터 쓸어 올렸다가 털며 말했다.

“싫어요. 청순한 분위기보다 야한 게 좋아요.”

“그래? 그럼 어떤 헤어스타일?”

아영은 가수 박정아를 떠올렸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에서 뜨거운 열정을 느끼곤 했다.

“박정아.”

아영은 짧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당장 자르지 뭐.”

아영은 감탄했다. 오지혜는 잠깐 사이에 머리 모양을 바꿔놓았다. 등에서 출렁거리던 숱 많은 머리카락이 잘려나가자 통통 튀는 얼굴이 거울 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영은 핸드백에서 육십 만 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꺼냈다. 보름마다 지급하는, 오늘이 세 번째 지급하는 개인 강습비였다.

봉투를 받은 오지혜가 서운한 표정으로 예쁘게 포장한 작은 물건을 내밀었다.

“이건 선물이야.”

향수였다.

“미스 서에게는 연한 향수가 어울려.”

아영은 오지혜가 준 향수를 그 자리에서 바로 귓불과 목 주위에 살짝 찍었다.

“우리 칵테일 한 잔씩 할까?”

아영은 그녀의 지나친 친절이 거북했다. 목덜미와 어깨선이 곱다며 쓰다듬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피부 마사지 핑계로 허리에서 손을 떼지 않아 짜증까지 냈었다.

아영은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치며 쿡쿡 웃었다. 오지혜는 동성애를 즐기는 여자였다. 그녀는 오늘 밤 한잠도 못 이룰 것이다. 손아귀에 넣었다가 놓쳐버린 스물한 살의 매끄러운 몸매, 안타깝다 못해 분할 것이다. 아영은 그녀의 손길이 몸 곳곳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오늘 밤 따라 교통체증이 심했다. 여느 때 같으면 신경질을 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빨간색의 아반떼를 교통체증의 흐름대로 맡긴 채 콧노래를 불렀다.

추석호 대리가 보고 싶었다. 그는 인기 스타 이병헌을 빼닮았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키와 몸매까지 그랬다. 그와 함께 어디를 가든 시선 집중이었다. 그때마다 짜릿하게 밀려오는 쾌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를 일요일인 내일 만난다. 그동안 피부 손질과 화장을 배우랴, 법석을 떠는 바람에 둘 만의 시간이 없었다. 오늘 오전에도 그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포천의 친구 농장에 가자고 했다. 아영은 거절하기 싫었다. 그와 주말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을 먹는 날이라 갈 수 없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싶었다. 기절시키고 싶었다. 서아영은 거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서아영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특별한 여자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행운의 여자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추석호 대리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휘청거렸다.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다. 함께 여행도 떠나는 눈치였다. 앙탈을 부리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이 변신이었다. 완벽한 변신을 이루기까지는 그를 만나지 않기로 했다.

아영은 보험회사 선배 언니의 도움으로 차부터 마련했다. 빨간색 아반떼였다. 그 즉시 밤낮으로 주행 지도를 받았다. 모델 학원의 특별반에서 워킹을 익혔다. 전문 코디네이터에게 옷의 색상에서부터 체형에 맞는 옷 고르기와 받쳐 입기 등 개인 지도를 받았다. 틈틈이 연극배우인 친구에게 표정 연출과 애교스러운 말투를 익혔다. 마지막으로 피부 손질과 화장술을 배웠다.

여기에는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갔다. 두 개의 적금을 해약하고, 신용카드를 이용해 대출도 받았다.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 많은 돈까지 타냈다.

아영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에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숨겨왔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두 달만의 만남, 그는 내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변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정말 서아영이가 맞느냐며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황홀해 할 것이다.

아영은 친구와 함께 생활하는 신사동의 원룸까지 오는 동안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커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친구의 입과 눈이 크게 벌어졌다.

“왜 놀라?”

아영은 친구의 볼을 꼬집고 빙그르르 돌았다. 침대에 네 활개를 펴고 누웠다.

“너, 아영이가 맞지?”

“응! 맞아.”

“섹시한 천사 같아.”

“미친 계집애! 섹시한 천사가 어디 있어?”

아영은 곰 인형을 끌어안았다. 얼굴을 부비며 코와 입에 키스를 퍼부었다. 곰 인형이 아닌 추석호에게 애무를 쏟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징그러워!”

아영은 친구의 엉덩이 발길질에 일어났다. 그녀가 마시던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이제 여행준비 완료야.”

아영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어쩌니? 불쌍해서.”

아영은 친구의 말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 내일 그 남자랑 여행가기로 했었니?”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 취소한대.”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왜?”아영은 핸드폰을 집어 들며 별일 아닐 것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영아! 어떡하니?”

친구가 울상을 했다.

“어떡하다니 뭘?”

아영은 추석호의 이름을 눌렀다. 통화 신호가 갔다. 거울 앞으로 다가서며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를 왼손으로 쓸어내렸다.

“그 사람이 널 만나서 직접 말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어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영은 갑자기 밀려드는 불길한 생각에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다시 눌렀다. 통화신호가 갔지만, 추석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영아!”

친구가 심호흡했다. 아영은 친구의 얼굴에 시선을 못 박았다.

“결혼한대. 다음 주 토요일에.”

아영은 친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다음 주에 결혼하다니 누가?

“아영아! 추석호 그 사람, 결혼한대.”

아영은 친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창가로 다가갔다. 서울의 밤 풍경이 조금씩 무너지다가 와르르 부셔졌다. 신랑 추석호와 나란히 하객에게 인사하는 결혼식장. 아영은 활활 타는 불길로 녹아내리는 자신의 모습에 눈을 감았다.

-나쁜 놈!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정병국 性풍자 콩트는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