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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닭 테마콩트 제10회] 며느리의 위세 대격파

기사승인 2017.03.14  01: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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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은 내 집에 세를 든 세입자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정 영감은 며느리가 차려놓은 밥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기씨 부동산중개사무소로 갔다. 커피를 마시던 기씨가 아침 일찍 웬일이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냉장고부터 열어 어젯밤 술안주 하다 남겨놓은 육포를 찾았다.

“내가 먹었어.”

기씨가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머릿속에 서릿발 같은 바람이 순식간에 일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먹은 육포를 놓고 왜 남의 음식을 네 마음대로 먹었느냐, 따져본들 인심 고약하다는 말밖에 더 듣겠는가. 애꿎은 보리차만 한 컵 비우고 기씨 맞은편에 앉았다.

“정말 집을 나올 생각이야?”

어젯밤에도 똑같은 질문을 하며 마누라도 없이 어찌 살려 하느냐. 그냥 자식 놈 등판에 기대어 살다가 죽는 게 상팔자다. 쓸데없이 객기부리다가 개고생하지 말라고 빈정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모르는 소리 마라. 이미 난 혼자 살게 될 날을 예상하고 요리학원도 다녔다. 가전제품도 못 다루는 게 없다. 거기에다가 노후에 맞는 취미생활도 하는 거 기씨 네놈이 잘 알지 않느냐, 큰소리 탕탕 쳤다.

“미친놈! 그 정도는 나도 해.”

“사기 치지 마. 이놈아! 넌 마누라 없이 하루도 못사는 놈이야.”

“좋아. 그건 그렇다고 처. 도대체 집 두고 왜 나오려고 해? 며느리가 나가달라고 하던가?”

며느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을 나와서 혼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첫 원인은 며느리에게 있었다. 그다음이 아들이고, 손자와 손녀도 은근히 압력을 가했으므로 불효 재판에 세운다면 가족 모두가 가해자였다.

지난여름이었다. 며느리가 아들과 휴가일정을 맞추더니 가족 모두를 건강검진 앞에 세웠다. 정 영감은 빠질 요량으로 낚시준비를 했다가 며느리에게 책만 잡혔다.

“아버님! 낚시도구 압수예요.”

“그건 월권이다.”

“건강검진 마친 후 가세요.”

며느리는 정말 낚시도구를 압수했다. 압수 방법도 고약했다. 붉은 끈으로 낚시가방을 묶더니 ‘압수’라는 스티커까지 붙였다. 옆에서 지켜보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미야! 이건 아니다.”

“건강검진 마친 후 곧바로 풀어드릴게요.”

아들과 손자 손녀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아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고 했고, 손자 손녀는 차라리 할아버지에게 받는 용돈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이미 며느리가 남편과 남매에게 엄포를 놓은 게 분명했다.

나흘간의 가족건강 검진이 끝나는 날 며느리의 큰 아량으로 쇠고기 뷔페 파티를 가졌다. 며느리는 파티에 앞서 일장 연설을 했다. 유리창을 등지고 선 며느리의 위세에 눌린 가족은 다소곳한 자세로 또박또박 쏟아지는 말에 귀를 기울었다.

“끝으로 이번 건강검진 때문에 압수했던 아버님의 낚시도구는 이 시간으로 해제합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버릇없는 며느리,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며느리는 마지막 말에 가족 모두가 손뼉을 쳤다.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엄마에게 따끔한 말씀 하셔야죠?”

건강검진에 빠지려고 지원 요청할 때는 못 들은 척 한 손자가 이번에는 거들고 나섰다. 손녀도 가세했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엄마의 일방적인 행동이 두 번 다시 없도록 할아버지가 단단히 못 박아달라며 애교를 떨었다.

“시끄럽다. 아군인지 알았더니 모두 적군이었어. 앞으로 복수혈전이다. 각오해!”

“할아버지! 뒤끝 있으세요? 치사하게.”

“치사하다? 그래. 이 할아비가 얼마나 치사한지 보여주마.”

“할아버지! 예쁜 손녀 배고파요. 빨리 먹어요.”

고기파티는 불행하게도 이날로 끝이었다.

며칠 후 병원을 다녀온 며느리가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가족 모두의 공통된 건강 적신호가 있다며 식생활개선이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가족 모두 내장 비만에다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아 식생활 개선을 단행합니다.”

정 영감은 알아서 하라며 일어서려다가 며느리의 표정이 비장해 일단 듣기로 했다.

“아버님은 당 수치와 혈압이 높다며 특히 조심하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어요. 죄송하지만, 아버님도 식생활개선 식단에서 열외가 아니니 그리 아세요.”

며느리의 말이 단호했지만, 별 일이랴 싶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대답이 얼마나 큰 불행을 몰고 올 것인지 저녁 식탁에 앉아서야 비로소 직감했다.

“이봐. 기씨! 며느리의 식단개선이 무엇인지 아나? 내 참 기가 막혀서.”

“죽은 돼지 피라도 내놨나?”

“차라리 그러면 끓여서 선지해장국이나 만들어 먹지.”

반찬이 초원에다가 소금기가 한 점도 없었다. 뭐랄까? 끼마다 빠지지 않던 고기가 한 점도 없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닭고기나 오리, 돼지, 소가 올라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초원의 대잔치였다. 콩나물국도 밋밋해 첫술에 맥이 빠졌다. 아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손자와 손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몇 수저 못 뜨고 일어설 기미가 보이자 며느리의 폭탄선언이 터졌다.

“건강 식단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가족에서 퇴출됨을 선포합니다.”

며느리는 수저로 탁자를 세 번 탕탕탕 쳤다.

“아하! 이제야 이해가 됐어. 난 당신이 웬 육포를 사 들고 들어오나 했어. 얼린 고기도 맛없다고 안 먹는 사람이 말이야.”

“말도 마. 며느리 몰래 식단개선 반대회의를 소집했다가 아들에게 당했어.”

“그건 당연하지. 제 마누라 편들 게 뻔하지.”

“맞아. 글쎄 아범, 그놈이 말이야. 아버지 건강 때문에 며느리가 애써 준비한 것이니 그냥 맛있게 먹으라는 게야. 그 한마디에 반대회의가 종 쳤다. 젠장!”

정영감은 가족 누구도 며느리의 권세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독립하자고 결정했다. 그 독립의 선택이 바로 이사였다. 식단이 입에 안 맞는다고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를 내보낼 수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심정을 모르는 기씨는 혼자 살 만한 전세를 알아봐 준다고 말만 할 뿐 집 한 번 구경시켜 주지 않았다. 오늘 또 기다리라고 말하면 다른 중개사무소에 간다고 말할 참이었다.

“조금 있다가 방 보러 가.”

“마땅한 거 있어?”

“원룸.”

“원룸? 에이! 그건 아니다.”

“시끄러워. 보증금 없고 월세 싸고. 한 달만 살아도 되니까 며느리 횡포에 맞설 무기로는 그만한 물건 없어.”

정 영감은 무기로 삼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씨 어깨를 탁 쳤다. 구더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기씨 머리에서 그런 재치가 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기씨! 고마우이.”

“아직 인사받기 일러. 며느리가 우리의 계산 읽으면 끝장이야.”

“그런가? 아하 이거 참!”

“일단 이렇게 해. 내가 가짜 임대계약서를 써 줄 테니 그걸로 협상해 봐.”

정영감은 아들과 손자 손녀를 다 젖혀놓고 며느리와 담판 짓기로 했다. 애들 어미가 차려놓은 식단으로는 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시아버지 건강 걱정을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칠십년의 입맛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꾸라는 것이냐? 나는 나대로 먹고살란다. 이 집에서 나가마. 그렇다고 이 집을 너희에게 주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내가 집을 나가는 순간 너희들은 내 집에 세를 든 세입자다. 크게 인심을 써 보증금 없는 월세로 해주마. 월세는 80만원으로 매월 말일에 입금해라. 알았느냐?

“어때? 이 정도 말하면 되지?”

“좋았어. 손자 전화번호 어떻게 돼?”

“뭐하게?”

“고기 못 먹게 하는 네 엄마 때문에 네 할아버지 집 나간다고 말하게.”

기씨의 손자와 전화통화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손자가 아빠에게 곧바로 상황을 알렸는지 휴대폰 벨이 울어댔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정 영감은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다. 토 달지 마라. 전화 끊는다.”

기씨가 잘 했다고 손뼉치자 정 영감도 엄지를 세우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며느리가 차린 아침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올 때 기분이 착잡했다. 뭐랄까? 똑소리 나고 싹싹한 며느리이지만, 시아버지를 우습게 안다는 생각을 식단개선 앞에서는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당장 수술할 만큼 중병이 발견된 것도 아닌데 유난 떤다 싶어 화도 났다.

해가 질 무렵 아들에게서, 손자 손녀에게서 차례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세 사람 모두 저녁 식사를 가족이 함께하기로 했다며 일찍 들어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며느리에게서는 전화는 고사하고 문자도 오지 않았다.

기씨를 꼬드겨 술 한잔 하려 했지만, 속이 안 좋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맨입으로 집에 들어갔다. 대문과 현관문을 열 때까지 코빼기 하나 보이는 놈 없었다. 내심 요것들 봐라. 단단히 벼르며 거실로 들어서는데 손자 손녀의 함성과 함께 폭죽이 터졌다.

늘 퇴근이 늦는 아범이 주방에서 나오며 소리쳤다.

“아버지! 저 월세 낼 돈 없어요. 봐 주세요!”

뒤따라 며느리가 나타나며 생글거렸다.

“아버님! 아버님 좋아하시는 삼계탕 준비했어요.. 양념 소금과 소주도 대령했고요. 그러니까 집 나가지 마세요. 아셨죠?”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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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 문학 파란풍경 마을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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