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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58]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기사승인 2018.04.09  0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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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지금 어디 계세요? 나는 절을 하면서 물었다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조화도 넣으려니 공간이 없어 문을 닫고 문고리에 걸려있던 꽃을 빼냈다. 3년 전 우리가 걸어놓았던 노란 국화가 아닌 하얀 백합인걸 보니, 오빠가 다녀와 마지막으로 걸어놓고 간 것일 거다. 언제 것인지 먼지가 시커멓게 앉아 누렇게 바래어 있었다.

그것을 빼려다 그 위에 같이 걸었다. 딱히 더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묘가 있으면 음식이라도 놓고 절이라도 하고 앉아 쉬기라도 한다지만, 복도 같은데 서서 손바닥만 한 문짝 앞에 가만히 서 있으려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올케랑 살 때 오빠는 이곳을 매일 왔었다고 했다.

“그 사글세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날마다 어무이한테 갔는가 보더라. 집주인 말이 만날 어디 나간다카더라. 운동 다니나 했는데, 경이가 전화로 물어봤더니, 할무이한테 갔다 왔다 카더란다.”

매일 와서 뭘 하고 갔을까?

혼자 물끄러미 서서.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다 갔을까. 보고 싶다고 했을까. 곧 가겠다고 했을까. 아니면 지켜달라고 했을까. 좀 도와 달라고 했을까.

그런데도 오빠가 사라졌을 때 왜 이곳을 와보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거겠다.

우리는 내심 두려웠다. 오빠를 찾게 될까봐. 만나게 될까봐. 병이 들어 입원이라도 시켜야 한다면, 요양원에라도 넣어야 한다면, 그 일을 누가 감당해야하나. 어찌 알면서 모른 척 하나, 어찌 보고도 못 본 척 하나. 그것을 두려워했던 거였다.

꽃이 삐뚜름했다. 바로 잡아도 똑바로 잘 되지 않아 다른 곳을 보니 다 그랬다. 어느 쪽이나 문에 어설프게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납골당 모양새도 돈에 따라 격이 다르다.

엄마의 봉분함을 안고 가족들과 이곳 납골당을 처음 찾았을 때 우리 모두는 적이 실망했다.

유골을 안치하는 데는 체 1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처음 나는 대리석 같은 납골 묘 그런 거를 생각했었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근사한 원목으로 만들어졌거나, 근사한 대리석으로 지어진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 여긴 왜 이렇게 우중중해?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문이 이런 철 케비닛이 아니고 유리로 돼 갖고 멋있던데. 액자랑 장식용품들로 예쁘게 꾸며 놓고 그랬어."

조카들도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불만스러운 투로 말했다.

"그런덴 얼마나 비싼데. 여긴 시립이라 그런 거 없다. 대신 억수로 싸다."

올케가 그랬다.

"아-"

납골당이 6단 높이에 있어 좀 높아 꾸벅 절을 하니 바로 앞에 있는 남의 칸에 대고 인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오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서있었다. 묘가 아니라서 절을 할 수도 없었다.

"엄마 좋은데 가시라고 기도하자."

우리는 교인도 뭣도 아니면서 서서 기도를 했다.

그때 갑자기 오빠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자고 했다.

모두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오빠가 먼저 무릎을 꿇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다들 기도를 중단하고 절을 했다. 통로의 좁은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려니 좁아서 엉덩이가 뒤쪽 납골장에 부딪혔다. 그런데서 우리처럼 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좀 창피했다.

홀라당 태워 재가 되고 가루가 된 골분에 대고 절을 한다는 것도 사실 좀 이상했다. 엄마의 영혼은 어딘가를 걷고 있거나 낫선 처음 가보는 낯선 장소에서 당황스럽게 헤매고 있을 것이다. 절을 한다면 북망산천 그 어딘가를 향해 해야 할 것 같았다. 층층이 가로세로 들어있는 그 통들에 대고 절이라니. 영혼이 가는 곳을 안다면 쫒아가 큰소리로 엄마를 불러보고 싶었다.

이제라도 복! 복! 복! 하고 소리치면, 황천길 어딘가를 가다가 돌아볼 것 같았다. 만약에 길을 잃었다 해도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길을 찾을 것 같았다. 나 혼자라도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외칠 걸 그랬나, 초혼제를 하지 않아서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엄마를 가도록 모른 체 한 건 아닌가.

엄마가 우리에게 그 책을 구해다 준 것은 혹시라도 당신 떠나게 되면 모든 법도를 갖추어 제대로 깨끗이 확실하게 보내달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엄마는 어영부영 이 땅에 미련 떨구어 놓지 않고 확실하게 훌훌 떠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나는 절을 하면서 물었다.

아라비아의 사막을 걷고 있을 거 같았다.

후딱 절을 마치고 납골장 문을 잠그고, 바로 뒤돌아서기가 서운해 우리는 잠시 묵념의 자세로 서있었다. 묘지라면 앉아서 과일이라도 깎아먹고 잡담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스파 탈의실에 있는 락카룸처럼 죽 늘어서있는 납골장의 좁은 통로에선 서있는 것 말고는 도대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가난해서 더 좁았는지도 모르겠다. 복도식 임대 아파트처럼, 말하자면 그곳은 아주 작은 복도식 20년 임대아파트 같은 거였다.

한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으며 뒤 쪽의 문들이나 앞 쪽의 문들에 달라붙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지나가게 할 수가 없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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