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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참 시詩 방앗간 9회] 목련

기사승인 2024.03.29  09: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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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판을 빠져나온 목련의 꿈으로부터

▲ (삽화=박소향)

[골프타임즈=김영미 시인] 여고 시절의 봄날은 목련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하얗게 헤매던 꿈이 피어나듯, 운동장 한편의 빈 벤치를 환히 밝히던 목련.

교실 밖에서 아우성치던 꽃들의 유희도 뒤로한 채, 그 시절엔 책상과 칠판이 유일한 미래인 줄 알았다.
꽃그늘의 체적은 비좁았지만, 그 환영의 밀도는 짙고도 깊었기에...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잠깐씩 열었다 닫곤 했던 사월의 페이지. 밀월의 감정들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몸소 체험이라도 하듯, 의식의 미세한 틈으로 유입 되던 여고 시절.

그 시절은 가고, 현실 속으로 밀려난 목련이 불치의 꿈을 부풀린다. 그 때, 칠판을 빠져나오던 목련이 지금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들녘이 펼쳐놓은 원고지에 봄을 쓰고  봄을 읽다가, 그 문맥 속의 희망을 찾아 방점을 찍는다.

목련

며칠 발길이 떠돌고
잊힌 사연들과 후회로 묶였던
현기증이 하얗게 인화된다
고요의 길이 새겨져야
제 행색을 열어주는 꽃

누군가는 흑백의 영혼이라 했고
누군가는 봄날의 종언이라고 했다

한동안 세상의 운명들은
목련을 찾아내느라
밤새 불면으로 헤매거나
한낮은 실어증에 빠지기도 한다

봄이 왔고 목련들이 왔다
낙화라는 독백을 남기기 위해
빈자리마다 빛나는 계절의 소실점

봄날의 칠판을 빠져나온 목련이
바람의 곡선을 부수며
사막을 넘어온 푸른 기억의 지렛대를
나뭇가지마다 걸치고 있다

시인 김영미
2003년 문예사조에 시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경기 광주지회 9대 지부 회장 역임, 시와수상문학 감사. 시집으로 ‘지렁이는 밟히면 마비된 과거를 잘라 버린다’ 착각의시학 제1회 시끌리오 문학상, 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순암 문학상을 받았다.


김영미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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