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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의 문화 단상] 사제(師弟)이야기, ‘스승의 한 마디 말은 삶의 길잡이’

기사승인 2017.05.15  2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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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지간의 정(情)은 우리문화의 참된 아름다움

▲ 제자 이상적과의 인연을 설명한 발문(跋文)이 병기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제자가 스승만 못하란 법 없고 스승 또한 제자보다 낫다는 법 없네...‘청출어람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모처럼 화창한 5월 중순의 첫날로 스승의 날입니다. 동네에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고등학교가 나란히 붙어있어 꽃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이 꽤 보입니다. 개중에는 케이크상자를 든 학생도 더러 눈에 띄는데 괜스레 선생님을 곤란케 할까 걱정됩니다. 정성은 갸륵하나 김영란법(法)에서 금하기 때문입니다. 사제 사이의 애틋한 정이 무너진 세태를 생각하며 오늘은 사제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필자는 중당(中唐)시대 문장가 한유(韓愈)가 지은 「사설(師說)」을 즐겨 읽으며 또 가르치기도 좋아합니다. 스승의 역할과 사제관계의 본질을 잘 설파해서입니다. 이 글은 우선 스승이란 진리를 전하고 학업을 전수하며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으로 단지 제자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진리를 듣고 배웠을 뿐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제자라고 스승만 못하란 법이 없으며 스승 또한 제자보다 낫다는 법이 없다고 강조하는데 이 구절이 특히 좋습니다. 푸른색이 쪽 풀에서 나왔으나 쪽 풀보다 더 푸르듯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가능해야 인류사회의 진보와 발전이 활발해집니다.

공자의 수제자로는 단연 안연(顏淵)이 손꼽힙니다. 『논어』 도처에 공자가 안연을 칭찬한 구절이 많으며, 때로는 다른 제자와의 비교도 서슴지 않습니다. 「옹야(雍也)」편에서 “안연은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으나 나머지 제자는 열흘이나 반 달 정도 밖에 그러질 못했다.”라고 하였고, 「술이(述而)」편에서 “등용되면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물러나 재주를 숨기는 일은 오로지 나와 안연만이 할 수 있다.”라고 해서 옆에 있던 제자 자로(子路)가 자신은 어떠냐고 질투까지 했습니다.

얼핏 보면 공자가 안연을 편애한 듯합니다. 하지만 「공야장(公冶長)」편에서 자공(子貢)이 자기와 안연 중에 누가 똑똑하냐고 묻자 공자는 네가 어찌 감히 안연을 넘겨볼 수 있겠냐고 힐난하고선 “못하고말고! 나와 넌 안연만 못하다네.”라고 한 것을 보면 편애만은 아닌 듯합니다. 안연의 청출어람 자질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는 이 대목에서 공자의 넓은 흉금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스승이고 부러운 사제지간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이에 못지않은 사제지간 미담이 있었습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창작에 얽힌 일화입니다. 헌종 5년(1839) 9월에 제주도로 유배되어 8년 반을 울타리 안에 갇히어 바깥출입을 금지 당했습니다. 권세가 떨어진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중죄인을 아무도 찾아올 리 없었지만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세태인심과는 반대로 여러 차례 바다 건너 제주도로 스승을 찾아뵙고 청나라에서 구해온 귀한 서책을 전했습니다.

변함없는 이상적의 진정에 감격한 추사선생은 제자의 지조를 『논어』의 「자한(子罕)」에 나오는 “날씨가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 ”구절을 빌려 비유하며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그려 보냅니다. 추사는 한 채의 초가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렸으나 그림의 여백에서 사제지간의 끈끈한 애정과 서릿발 같은 선비의 지조가 읽혀집니다. 세한도가 왜 국보 180호로 추앙받는지 이해가 갑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역시 제자 황상(黃裳)과 유배지에서 사제지간의 연을 맺었습니다. 다산선생이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 할 때 향리의 중인(中人) 자제 황상을 신분에 상관없이 제자로 맞습니다. 그러나 당시 황상은 열다섯 살 무렵으로 스스로 “둔하고, 막혀 있고, 미욱한” 단점이 있다고 단정하여 학문의 길로 나아가길 머뭇거렸습니다.

다산은 어린 황상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학자에겐 세 가지 큰 병통이 있는데 너에겐 하나도 없구나. 하나, 기억력이 뛰어나면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이 있다. 둘, 문장력이 뛰어나면 글이 가벼워지는 폐단이 있다. 셋, 이해력이 빠르면 거칠게 되는 폐단이 있다. 둔하지만 파고드는 자는 그 구멍이 넓어지며,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훤히 트이고, 미욱한 것을 닦아 내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아 부지런히 파고, 부지런히 뚫고, 부지런히 닦으라는 이른바 삼근계(三勤戒)를 내렸습니다.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토록 명심하고 부지런히 노력해 훗날 다산시파(茶山詩派)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우뚝 섰습니다. 스승의 한 마디가 삶의 길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재주가 부족한 제자라고 포기하지 않은 다산선생의 다독임은 훌륭한 사표(師表)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나에게 안연과 같은 창출어람의 제자 있는지, 내가 내 스승에게 이상적과 같은 제자가 된 적이 있는지, 그리고 다산선생처럼 모자란 제자에게도 삶의 지표가 될 만한 가르침 주길 힘썼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번 주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제지간의 좋은 인연 맺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스승의 날만큼은 사제지간에 감사의 말과 함께 꽃 한 송이 정도 건네는 풍속이 사라지지 않길 기원합니다. 사제지간의 정(情)은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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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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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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