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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소설 제30화] 아름다운 문학상

기사승인 2018.07.19  08: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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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한테도 그런 영광의 기회가 올까요?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문화예술상 시상식은 인산인해였다.

호텔 2층의 대연회장은 시상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발 들여놓은 틈도 없이 혼잡했다. 늦깎이 시인 문 여사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동행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대형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음악 소리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문 여사가 챙긴 시상식 안내서는 두꺼운 인물화보였다. 연예계에서부터 스포츠, 서예, 도예, 미술, 음악, 무용, 문학 등 수상자가 백 명도 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시상식 출입문 한쪽에 본부석과 똑같은 촬영용 시상대를 만들어 놓았다. 거기도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었다.

“꽃다발을 전하고 그만 나갑시다.”

문학예술상을 받는 문 여사의 지인에게 미안했지만, 도저히 수상 순번까지 기다릴 수 없어 재촉했다. 지인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호텔 밖으로 나온 문 여사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수상까지 보지 않고 나와서 그랬나 싶어 사과하자 아니라고 했다. 말없이 앞서 걷던 그녀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묻지도 않고 커피를 가져온 그녀의 표정이 여전히 무거웠다.

“세상에! 뭐 그런 시상식이 다 있대요?”

시장바닥의 행운 상품권 추첨도 그것보다 나을 거라고 했다. 문 여사는 행사장으로 들어설 때 깜짝 놀랐다. 얼마나 큰상이기에 이렇게 축하객이 많을까. 그러나 안내서에 수록된 수상자들의 얼굴 사진을 보는 순간 실망했다. 시상 안내서가 아니라 몇백 명의 수상자 얼굴 앨범이라는 느낌에 친구의 문학예술상 수상을 축하하려 온 자신이 못내 한심했다.

“죄송해요.”

문 여사의 사과에 커피를 조금 마셨다. 기분이 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혼잡한 상황은 그녀가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친구가 상을 받는다니까 기쁜 마음에 꽃다발을 준비했다. 그 자리에 내게 동행을 요청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왔다.

“그래도 상은 좋은 거 아닌가요? 그냥 넘어갑시다.”

“정말 그럴까요?”

그녀의 되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달이었다.

문 여사가 급히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고도 곧바로 전화했다. 앞뒤 설명 없이 지금 약속 장소로 나간다고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커피숍으로 서둘러 갔을 때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봉투였다.

“이거 뭐죠?”

“제 첫 시집이 문학상에 추천됐다는 통지서에요.”

등단 삼 년 차의 새내기 첫 시집이 문학상에 추천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육십 턱 밑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환갑잔치를 첫 시집 출판기념회로 대신한 그녀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늦깎이로 등단할 때 부끄러움을 먼저 표현했던 그녀도 문학상이란 상 앞에서는 들뜬 가슴을 어쩌지 못했다.

문학상 추천 통지서보다 작가회 가입신청서부터 훑어보았다. 가입신청서 양식은 여타 문학단체와 대동소이했다. 가입비와 연회비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후원금 항목은 굵은 서체 때문일까.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그날 문 여사에게 가타부타 설명 없이 통지서와 가입신청서를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것들이 날아오면 무조건 버리라고 했다. 문 여사도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지만, 왜 버리라고 하는지 비로소 눈치를 채고 쓸쓸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전화로 물어봐도 될 일을 요란 떨어서요.”

“안타깝지만, 문단에도 부끄러운 일이 많아요. 문 여사는 등단까지 몇 년 걸렸나요?”

“오 년? 아 육 년이네요. 육 년!”

짧지 않은 습작 기간이었다. 그 정도의 시 쓰기 습작기를 거쳐 등단했다면 나름대로 기초는 다진 셈이었다. 시 창작 아카데미 수강생이 된 지 두 달 만에 등단했다는 기절초풍할 사례도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수준 이하의 시를 고쳐서 등단시키는 것은 문예지 세계의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날 문 여사는 안타깝다 못해 슬픈 이야기라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한가? 설사 피치 못할 현상이라고 치자. 느닷없이 문인이 된 당사자는 어떤 느낌인지 정말 궁금하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문 여사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등단 연차가 제법 된 시인이었다. 만날 때마다 첫 시집을 내야 한다면서도 늘 말뿐이었던 까닭은 퇴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집에 수록할 작품 퇴고는 불가침의 절대적 영역이다. 반드시 본인이 해야 하는, 그 시인의 예술 세계이므로 어떤 도움의 손길도 줄 수 없다. 있다면 퇴고한 작품에 혹시 오자나 탈자가 없는지의 교정 정도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가, 그 시인과 교류가 뜸해지더니 끊어졌다.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지만, 잘 있겠지 하던 차 시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축하 박수를 쳤다. 그러나 박수를 끝내기도 전에 알아서는 안 될 시집 출간의 내막을 들었다. 충격이 너무 커 지금도 입에 담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 시인은 결국 스스로 시를 퇴고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힘으로 첫 시집을 냈다. 그 사실은 현재도 몇 사람 외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그 시인은 그 시집을 자랑스럽게 서점판매를 하며 시인으로서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이 사실을 문단의 선배로서 문 여사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가슴 속 깊이 접어두었다.

“아까 호텔에서요.”

문 여사는 식은 커피를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잠시 망설이는 눈치더니 친한 지인이 문학상을 받는 자리라 기쁜 마음으로 갔는데 숨이 막혔다고 했다. 또 시인으로서 모욕감도 느꼈다. 문학상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의 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별도의 시상대까지 만들어 놓고 사진 촬영을 하게 한 것은 정말 받아들일 수 없는 현장이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학상이 가문의 영광인가요?”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에 헛기침이 나왔다. 논리적으로 작가에게는 물론 가문의 영광이 맞다. 문제는 어떤 상을 어떤 절차에 의해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그 상의 가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늘의 현장을 빗대어 무조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대답 안 하셔도 돼요. 그냥 답답해서 물었어요.”

평소의 문 여사는 긍정적인 사고에 포용력 있는 여성이었다. 교직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지병으로 어쩔 수 없이 퇴직했으나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2 인생을 앞당겨 살라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시문학에 입문하여 등단 삼 년 차에 시집까지 출간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그녀도 오늘은 아닌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쓸데없는 곳까지 발걸음하게 해서.”그녀의 상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아요. 좋은 상도 많이 있으니까.”

“그럴까요?”

“암요! 벌써 잊었어요? 함께 목격했으면서.”

“아!”

문 여사는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지난해 연말이었다. 식당에서 우연히 목격한 어느 독서동아리의 송년회였다. 초대받은 시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작가와의 대화가 송년회였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대화 마무리 상황이었다. 이어 독서동아리에서 마련한 감사패와 꽃바구니가 초대 작가에게 전달되자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그 시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학상을 받은 거 맞죠?”

“부러운 얼굴이네요.”

“저한테도 그런 영광의 기회가 올까요?”

문 여사는 언감생심이라며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시인이 된 게 언제라고 분수도 모르고 욕심부터 낸다며 이번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저녁 할까요? 아니면…….”

그녀가 말꼬리를 죽이자 고개를 끄떡이며 일어섰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의 이런저런 불편한 마음을 털어내려면 술이 필요했다, 문 여사, 그녀도 똑같은 심정이었는지 앞장서 커피숍 출입문을 밀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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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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