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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 소설 제32화] 두 여자

기사승인 2018.08.16  08: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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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미치고 싶은 대로 미치며 살자.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너, 미쳤구나!”

“그러는 넌 안 미쳤고?”

단발머리와 긴 머리의 두 여자가 갑자기 키득거리다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커피를 마시던 주위 사람들이 처음에는 무슨 이런 여자들이 다 있어, 라는 눈길이었다가 이내 영문도 모른 채 그녀들의 웃음에 동화됐다. 고개를 저으면서도 빙그레 웃거나 피식피식거렸다.

두 여자는 주위의 눈길이 민망해 서둘러 커피숍을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번에는 서로 손에 든 커피를 가리키며 까르르까르르 웃었다.

“야! 그 상황에서도 커피를 챙겼어?”

두 여자는 팔짱을 꼈다. 명동을 빠져나와 지하철 2호선 지하도로 들어갔다. 한 여자는 왼쪽에, 또 한 여자는 오른쪽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며 커피 빨대를 빨았다. 지하도 양쪽의 점포를 힐끔거리며 걷다가 ‘만병통치한방차’라고 쓰인 붉은 깃발 앞에서 멈췄다. 그 깃발이 아니더라도 코를 찌른 약초 달이는 냄새가 발길을 잡았다.

“살까?”

“뭘?”

“만병통치한방차.”

“너 저 깃발을 믿어?”

며칠 전에 당고개를 갔었어. 간암이 재발해 얼마 못 견딜 것 같다는 이모를 문병한 후 4호선 종착역 앞쪽의 무당촌에 갔었어. 흰 깃발보다는 붉은 깃발에 붉은 철문 집 무당이 더 신명하겠다 싶어 들어갔지.

단발머리 여자의 느닷없는 무당집 이야기에 긴 머리의 여자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칠십도 훨씬 더 먹을 노파가 열댓 살 여자애의 발을 씻겨주고 있었는데 어찌나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운지 무서워서 돌아서는 순간이었어.”

도도하게 눈 감고 있던 콩알만 한 계집애가 ‘저년 봐라. 제 팔자 무서운 줄 모르고 도망친다.’라고 소리치는 거야. 또 철문 위로 높이 솟은 붉은 깃발도 말하는 거 있지. 이렇게 말이야.

“네년 팔자 천상선녀가 고쳐준다. 땡잡았어. 너!”

“정말 어린 무당말을 믿고 그 남자와 결혼한다고?”

“그래. 그 남자랑 살면 이승이 극락이라는데 뭘 망설여? 냉큼 내 서방 만들어야지.”

“잠깐! 우리 술 마시면서 얘기하자. 맨 정신에는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머리 긴 여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지하도를 빠져나와 카페로 들어갔다. 술과 안주를 서둘러 주문한 긴 머리 여자가 다그치듯 물었다.

“너 그 인간이랑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

단발머리 여자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애무당의 말을 듣고 결혼한다?”

“응!”

망설임 없는 단발머리 여자의 대답에 또 다그치듯 물었다.

“그 남자에게 결혼하자고 말했어?”

“그럼! 무당집을 나오자마자 바로 전화했지.”

단발머리 여자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소곤거렸다.

그 친구, 장미꽃 한 아름 안고 달려왔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정말이냐고 묻기에 살짝 입맞춤해줬더니 펑펑 우는 거야. 고맙다면서 평생 나만 사랑하겠대. 오로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자기의 모든 걸 다 바치겠대. 아! 그 약속도 했어. 아기는 낳기 싫으면 그냥 단둘이서만 살자고 할 때 어린 무당에게 미안했어. 현금이 없어서 복채를 조금밖에 못 줬거든. 카드결제를 할 걸 깜빡했어.

“오로지 나만 사랑한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 애를 낳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이런 결혼 행운이 어디 있어? 안 그러니?”

먹을수록 양양이라고 몇 가지 더 요구했어.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고민하는 눈치더니 깨끗하게 받아들였어. 오히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거 있지. “너 설마 그 얘기도 한 거야?”

“그래!”

“그 말 같지 않은 생각을?”

긴 머리의 여자가 술잔을 들었다가 놓으며 미쳤다는 말만 반복했다. 단발머리 여자가 생글거리며 약 올리듯 말했다.

“그래. 미친 거 맞아. 인정해”

그런데 말이야. 난 우리 삼 남매의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아. 철천지원수처럼 증오하면서도 산다? 정말 싫은데, 이제는 그만 살고 싶은데 아닌 척 살 섞으며 평생을 산다? 한 번뿐인 인생, 왜 그렇게 살아?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지. 아주 끔찍하게.

“남자에게 결혼식은 하지 말자. 꼭 알려야 할 사람들에게는 결혼했다는 메시지만 띄우자. 두 사람 중 누구이든 그만 살고 싶을 때는 헤어지기 편하게 결혼신고도 하지 말자. 어차피 애도 안 낳을 건데 결혼신고가 뭐 필요하냐.”

“알았어. 그만해. 다 좋아. 그럼 생활비는?”

긴 머리 여자가 짜증스럽게 묻자 단발머리 여자가 딱 잘라 말했다.

“반반씩, 똑같이 부담. 내가 얹혀살 여자로 보이니?”

“남자가 뭐래?”

“자존심이 상한다고 투덜거렸지만, 찬성했어.”

긴 머리 여자가 잔을 비운 후 너도 너지만, 그 인간도 참 더럽게 미쳤다고 빈정거렸다. 그게 무슨 결혼이야. 동거지. 동거에는 이혼이 없으니까 헤어지기 편해서 좋기는 하겠다. 잠깐! 인제 보니 두 인간이 영악스러운 천재들이잖아. 무엇 하나 거치적거리는 게 없어. 살고 싶은 사람과 한세상 사는데 어떤 의무나 책임이 없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맞아! 이승이 바로 극락이지. 그 아기무당 정말 용하다.

“넌 극락인데 난 미친 여자네. 나, 결혼하지 말까?”

긴 머리 여자의 말에 단발머리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유리벽 바깥 풍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거리는 사람으로, 도로는 차로 붐볐다. 유리벽의 방음이 잘 되었는지 바깥세상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침묵의 도시를 바라보던 단발머리 여자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넌 올바르게 미쳤으니까 정식으로 결혼해. 애도 많이 낳고.”

긴 머리 여자가 무슨 말인가 반박하려 하자 가로막았다. 내 말부터 들으라며 조목조목 짚었다. 시부모가 들어와 살겠다니까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며? 어디에서 이런 복덩어리를 데려왔느냐며 사십 먹은 장남 엉덩이를 두드리며 난리가 났었다며? 아이도 삼신할미가 주신 것만큼 낳겠다니까 우리 집에 큰 기둥이 들어왔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다며? 그럼 됐어. 너 잘 미친 거야. 미쳐도 그렇게 미치면 행복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네 선택을 후회하지 마.”

“정말 잘한 걸까? 다들 아니라는데…….”

단발머리 여자가 그녀의 빈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왜 아니래? 이유가 뭐야?”

“몰라. 하여간 시집에 들어가 사는 게 아니래. 바보천치이면 모를까.”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자 최악의 3대 상황을 알려주었다. 장남을 사랑하는 여자가 첫 번째였다. 두 번째가 자식을 둘 이상 낳겠다는 여자, 그리고 전세도 좋으니 결혼부터 하자는 여자라며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걸리면 인생 종치는 거라고 충고했다. 그 언니에게 결혼하면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자 기절초풍을 했다. 차라리 혼자 자유롭게 살라고 애원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바보천치라고? 네가?”

“그래. 돌연변이 괴물이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고. 나, 그 결혼 포기할까 봐.”

머리 긴 여자는 심각했고, 단발머리 여자는 반대로 가벼운 표정이었다. 귀담아듣지 말라며 술잔을 집어주었다.

“난 나대로 미치고, 넌 네가 믿는 대로 미치면 돼. 자! 마시자.”

두 여자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머리 긴 여자가 잔을 채웠다.

“알았어. 우리 미치고 싶은 대로 미치며 살자.”

두 여자는 잔을 비운 후 마주 보며 빙그레 웃다가 또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애써 웃음을 참다가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커피숍에서처럼 깔깔거리다가 손을 잡았다. 마주 보며 웃는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두 여자는 그 눈물을 가리키며 더욱 자지러졌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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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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