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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의 샘터조롱박 72회] 묵은 짐이 주는 평온

기사승인 2022.02.24  09: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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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 묵을수록 숙성이 잘 된다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장롱 깊숙한 곳에 숨긴 보물을 꺼냈다.

오래도록 손이 타지 않은 묵은 짐들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내용물을 꺼내본다. 결혼할 때 해 온 반짇고리. 그 속에 든 참빗.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명주 실타래와 알록달록 바늘꽂이 모자. 바늘 끝이 녹슬지 않고 부드럽게 갈아준다며 머리에 쓱쓱 문지르듯 머리카락을 한 움큼 뭉쳐 만든 바늘꽂이. 바늘 실을 길게 꿰면 시집 멀리 간다 하고 실매듭도 맺지 말아야 풀 일도 없다 내내 말씀하셨다.

한 켠엔 녀석들이 처음 한글배우며 쓰던 글씨들과 초등학교 그림일기장. 태권도장 다니며 받은 승품 띠도 있다. 상패며 손때 묻은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삐삐와 처음 썼던 핸드폰도 새롭다. 세월이 묻어나는 것들을 하나씩 들추며 그 시간 속으로 유영한다.

우선 아이들의 임신 때부터 썼던 일기장이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라고 어느 시인이 읊을 때, 등이 따끔거리는 봄 햇살에 만난 우리 아가”로 시작하는 큰아이 일기장. 그런가 하면 “오! 가을이여/ 열매의 짐을 지고/ 포도의 빛으로 물들었거늘/ 가지 말고 앉아라/ 내 지붕 그늘에, / 거기서 그대 쉬어도 좋아”라 가을을 노래한 시인과 함께 작은 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나만이 간직한 아이들의 청소년시절까지의 삶의 여정이 그 일기장안에 함께 한다. 다 자라버린 아이들은 이제 그 시절을 잊고 그토록 원하던 성인으로서의 삶에 여념이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 빠른 시간 속에 탑승하여 쾌속으로 달리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예전의 나를 본다.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아이들의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정말 ‘혼자만 잘 살믄 뭐 하능교?’하듯 모여서 함께 한 세월이 묻어난 것들이 오늘 그 빛을 내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간도 함께 이겨내며 결국은 끝이 있어 다 지나갈 일. 희망을 안고 살아갈 힘을 준 것 같다.

묵은 일기장에 묵은 살림살이. 간장도 햇수를 더 하면서 보약이 되고 메실 청이며 포도주도 해를 더 할수록 진액이 된다. 엄마가 준비해 준 반짇고리며 한 때 직장생활에서 받은 감사패며 공로상이 삶을 더욱 향기롭게 만든다.

이만하면 내 삶도 괜찮게 살았고 내일 더 열심히 살 여력이 남아있다. 풍족함은 내 안에 있고 나 만의 자산이다. 묵은 짐 속에서 오랜 나를 보고 내일을 느낀다.

노경민 작가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노경민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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