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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대담 : 소설가 박범신4 - 작가를 통해 인생을 탐색하다

기사승인 2014.04.07  1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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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위기가 곧 삶의 위기’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 작가들의 역할


[
골프타임즈=대담/김기은 소설가] 지난 호에 이어 소설가 박범신과 소설가 김기은의 문학 대담의 시간을 이어진다.

김기은 : 은교에서 소녀의 이름이 특이합니다. 은교를 은밀한 교제 은발의 교제로 해석해도 되나요?

박범신 : 은교는 남여 구별이 없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한 이름을 택했죠. 소설에서 보면 은교는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작가의 관념에서 나온 인물이지요, 실제적인 인물이었으면 소설 속에서 은교의 노트 같은 게 있어야 되는데, 은교의 노트는 없거든요. 단지 육체를 가진 여체로서의 여자가 아니라 불멸의 가치, 진선미를 완전히 갖춘 아름다움, 그런 것의 표상이거든요. 영원성, 그런 거죠. 노인의 머릿속에 그 처녀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처녀니까 뮤즈죠. 너무 여성적인 이름이 확 들어가 버리면 좀 안 어울릴 것 같아서, 남녀구별이 애매해야 했죠, 굳이 소설 속에서는 긴장을 위해서 여성으로 설정했지만, 소설적 서사의 지향으로 보면 그것이 꼭 여자일 필요도 없고, 기독교인이 세계 제일의 큰 교회를 짓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게 은교일 수도 있는 거죠. 영자라든가 영희라던가 그런 식으로 두드러진 여자 이름은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매력 있는 이름을 찾다보니 은교가 됐고, 옛날에 내가 30대 초반에 썼던 짧은 장편소설에도 은교란 여자가 나와요. 여주인공의 동생이죠, 그 이름이 생각났어요. 은교는 일종의 상상력의 인물이에요.

김기은 : 다시 은교에서 소설 속의 이적요와 영화에서의 이적요, 혹은 이적요 분(박해일)에 대해 잘 부합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범신 : 글쎄요, 배우가 너무 젊죠. 배우가 한 40대나 50대쯤 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 배우(박해일)가 지금 30대거든요. 분장으로 잘 될 거라고 감독은 그랬지만 분장도 한계가 있거든요. 얼굴의 주름은 만들어 붙일 수 있지만 옷 속에 있는 육체도 관객은 느낄 수 있는 겁니다. 본인도 연기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박해일 같은 경우 관객을 끌어들이는 임팩트가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죠. 좋은 배우고요.
영화 속의 이적요도 내가 그린 이적요하고 매우 잘 부합한다고 생각은 인해요. 박해일의 경우 연기는 좋은 배우인데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는 아니죠. 소설 속의 이적요는 키가 크고 마르고 거인 같은 느낌, 거대한 산 같은 느낌의 시인 캐릭터거든요. 대신 은교는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에 부합하는 캐릭터였고, 얼굴이었습니다. 영화하고 소설의 다른 점 중 하나입니다.
원작소설에서는 사랑이 핵심이 아니에요. 어쩌면 노인과 남자 제자와의 관계가 더 중요할 수도 있고, 단단한 고독을 보여주는 캐릭터, 이적요의 그런 단단하고 카리스마가 넘치고 견고한 고독감은 영화에서 표현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스토리도 줄여야 되고, 영화 문법이 따로 있으니까요

김기은 : 은교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시인이라 그런지 좋은 시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요, 그 중 선생님의 시집 산은 움직이고 물은 머물다에서 인용한 시들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소설가시면서 시집을 내신 것이 의외입니다.

박범신 : 사실 내고 싶어 낸 시집은 아니에요. 10여 년 전에 제 등단 30주년이 되니까 제자들이 나를 기념하기 위해 책을 낸다고 출판사와 구두로 약속을 했다고 했답니다. 난 그런 게 싫어요. 나를 위해 책을 낸다든가 하는 의례적인 대우를 싫어하거든요. 문단에서 청년작가라 했는데 그런 걸 좋아 하겠어요? 그만두라고 했더니 제자들이 무척 섭섭해 하더군요. 책 내고 술 한 잔 먹고 싶었다며 내가 술 먹을 핑계를 만들어 줄게하고 제자들하고 술 한 잔 먹을 핑계로 시집을 기획했죠. 1993년 절필하고 있을 때 용인 한터산방에 머물며 3년 동안 썼던 짧은 시같은 글들이에요. 한터산방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내 문학적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곳이에요.
처음엔 시집을 출판한 <문학동네>에도 시집 시리즈에 넣지 말라고 했고, 광고도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일종의 기념시집 같은 거였죠. 원래 습작기 때 대부분 시를 써왔었고, 시의 습작기가 길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좀 멀어졌다가 소설 쓰기를 중단하는 동안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거죠. 다만 가능하면 내 길, 내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고자 하는 게 내 뜻이기 때문에 시를 많이 쓸 수는 없지요. 굳이 안 쓸 필요는 없지만, 자꾸 시집을 내거나 쓸 생각은 없고, 더 늙으면 한 권정도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김기은 : 선생님의 소설들은 읽고 나면 굉장히 강열한 이미지들을 남기거든요. 예를 들면 그 여름의 잔해의 패대기 처진 금붕어나 벼락 맞은 노송의 이미지도 강열하게 기억되고, 풀잎처럼 눕다에서 벗은 어깨뼈에 얹혀 있는 건강한 햇살’, ‘호르래 호르래우는 새벽보다 정갈한 새소리’, 더러운 책상유독식물과 같은 매음녀는 나의 소매에 달리어 있다’, 은교맑은 물 고인 네 쇄골 속 우물같은 표현들을 보면 상당히 시적입니다.

박범신 : 선생님 소설에 대한 평에도 자연과 인간의 일치와 화해를 시적인 분위기로 끌어 올린다라든가, “언어의 지극한 절제, 감성적인 어휘 구사 능력, 음율적인 문장의 구성방법등을 꼽고 있던데요, 데뷔 전 오랫동안 시를 습작하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느끼시는 소설과 시의 차이점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시인이나 소설가의 생각은 다르겠죠. 시는 일종의 논리의 해방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매우 행복한 놀이로 느낄 수 있죠. 시는 논리로부터 내가 벗어나는 반면 소설은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 안에 있기 때문에 논리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은 소설 속에서는 어렵죠. 소설가는 강력한 논리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짐이죠. 시궁창을 배를 대고 기어가는 것 같은 것이 산문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진땅에 뱀처럼 몸을 대고 낮은 포복으로 가는 것이 일종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면 시는 하늘에 닿을 수도 있고, 우물 밑에 닿을 수도 있고 그 범위가 훨씬 넓죠. 어떻게 보면 문학의 원류에 가장 가까운 것이 시라고 봐요.
소설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를 쫓아갈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어요. 소설은 지상의 문학이라면, 시는 천상을 다루고 있죠, 논리성을 떠난 천상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에 대한 내 마음은 기본적인 외경감을 가지고 있어요. 좋은 시 한편이 긴 장편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죠. 나는 시를 쓸 때가 참 행복해요. 시인들이 들으면 화낼지 모르지만, 소설을 쓸 때는 참 고통스러운 반면, 시를 쓸 땐 편안해요. 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의 본성과 만나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휴식이에요.

김기은 : 최근의 소설 은교, 소금도 그렇고, 소설 속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 중에 유독 시인이 많은 데요. 시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더욱이 더러운 책상에서 보면 시를 대하는 양면적인 모습이 나오는데요, 창녀들을 울리는 매우 감동적인 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형사가 발가벗겨 놓은 내 앞에서 낭송하는 시, 섹스 중의 시같이 조롱 섞인 가증적인 모습도 나오잖습니까? 이 시대에 시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범신 : 지식인이나 제도권 안의 광기에 편입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이 없어요. 여기에 나오는 형사에게 시는 하나의 억압의 도구일 뿐이에요. 시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낭송해주면서 사상적 도구를 보이기 위한 것이지요. 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은 아니지요. 시는 도덕적인 것인데 진정한 의미는 이 세계가 패기 처분한 것들에 깃들어 있다. 이 세계서 폐기처분한, 정말 유곽 같은 데서 오히려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어떤 도덕심이 살아 꿈틀거리지요. 세계는 유곽과 같아 돈 버는 사람, 권력가진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몸 팔고 양심팔고 하는 거 아니에요. 사회 구조 안에 있는 것은 모두 거짓이며, 그러한 사람에게는 시의 감동이 전달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거지요. 시를 모르는 세계는 정말 삭막한 세계에요. <계속>


김기은 소설가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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