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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의 문화 단상] 맛집이야기, 인정이 더 맛깔스럽다

기사승인 2016.11.22  02: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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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 삼매경에 빠지는 호기...식욕은 인간본성의 숙명

▲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로부터 올해 별 둘 등급에 선정된 레스토랑 피에르가니에르

“요즘 남도음식 잘하는 거시기는 모두 서울로 갔어, 제대로 먹으려면 서울 가야제”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구르는 낙엽을 밟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늦가을입니다. 날도 그리 차지 않아 산책하기 제격인 요즘입니다. 강의가 없는 날이라 동네에 마실 나갔다가 시장하여 예닐곱 명이 줄을 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음식 맛은 제법 그럴듯했는데 뭔가 빠진 듯했습니다. 오늘은 맛집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맹자』의 「고자(告子)」 상편에 “식욕과 색욕은 인간의 본성이다(食色, 性也)”란 말이 나옵니다. 옛날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을 논하면서 식욕을 색욕보다 앞에 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인간의 삶에 먹는 일이 가장 기본이라는 인식일 것입니다.

지금이야 맛난 음식을 찾는 외식문화가 보편화되었지만 2, 30년 전만해도 주위에 식도락(食道樂家)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비교적 젊은 시절부터 식도락가로 자처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맛나고 별난 음식을 찾아 맛보고 품평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회(蛔)가 동(動)하면 하룻밤에 동해안으로 달려가 아침은 속초에서 생선회로, 점심은 울진에서 대게로, 저녁은 포항에서 물회로 맛 삼매경에 빠지는 호기를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다도해로 여행을 하면서는 풍광 감상은 뒷전이고 남도정식 잘하는 식당 찾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어느 해는 목포에 가서 물어물어 소문난 한정식 집을 찾았는데 상차림격식도 날림이었고 음식의 풍미가 기대에 못미처 크게 실망했습니다. 해남에서 보길도로 가는 여객선에서 만난 노(老)선장에게 필자의 실망을 전했더니 “요즘 남도음식 잘하는 거시기는 모두 서울로 갔어, 제대로 먹으려면 서울 가야제!”라고 한탄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요즘 자천타천으로 맛집이라는 음식점이 많습니다. 기실 맛집이란 요리가 훌륭하여 멀어도 찾아갈 만한 식당으로, 좋은 식재료와 창의적인 음식풍미에 정결한 찬기, 우아한 인테리어, 친절한 서비스의 결집체입니다. 말하자면 음식의 종합예술적인 공간입니다. 단순히 음식만 맛있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오미(五味)의 조화를 이룬 요리를 손님상에 내놓는 것은 기본요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격조와 풍류가 더해야 비로소 맛집 반열에 들어갑니다.

재료를 아끼느라 조미료에 의존하는 집은 맛집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정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길게 줄을 서는 일이 일상인데 대책이 없는 집도 맛집에 들지 못합니다.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식당 안을 허름하게 꾸며놓고 조악한 식기를 내놓으면 역시 맛집에 들지 못합니다.

서비스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식맛 하나 믿고 손님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며 “욕쟁이할머니”라고 간판으로 내세우는 식당은 더더욱 맛집이 아닙니다. 손님에게 무례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보는 맛집들의 맹점(盲點)입니다. 하지만 맛있으니까 무례와 불편과 불친절을 용인하는 요구는 부당합니다. 부당한 예외를 묵인하는 관습은 타파되어야 합니다.

국가경영이란 고급요리를 동네아주머니의 주먹구구 조리법으로 농단하도록 맡겨두었다가 곤죽처럼 망친 시국입니다. 입맛 떨어지는 시국이라 맛집 타령이 오히려 멋쩍습니다. 그래도 필자가 경험한 최고의 맛집을 소개합니다.

동해안 영덕 위의 푸른 바다란 어촌이 있습니다. 그 어촌 산중턱에 한 어부의 횟집이 있는데 말이 어부의 집이지 산중턱에 날아갈 듯이 자리 잡은 한옥이 운치가 그윽했습니다. 곱게 단장한 어부아내가 별다른 반찬 없이 큼직하게 썬 회 한 접시와 삶은 소라를 소쿠리에 가득 담아 내어놓았습니다.

어촌 세간답지 않게 기품이 빼어난 한시병풍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회맛도 일품이었지만 금방 따온 전복과 해삼이라며 주문도 않은 해산물을 계속 맛보라고 권하는 그 인정이 사실은 더 맛깔났습니다. 최고의 맛집은 역시 인정미(人情味)가 넘치는 집인가 봅니다.

이번 주는 음식풍미에다 인정미까지 넘치는 식당을 발견하길 축복합니다. 심란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식욕은 인간본성의 숙명입니다. 맛나게 잘 먹어야 촛불집회도 나갑니다.

장창호 칼럼 보러가기➧장창호의 문화 단상

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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