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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스타톡톡] 춤꾼배우 박혜준, 영화감독 문신구의 절묘한 콜라보

기사승인 2017.09.05  08: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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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흡으로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 수법 ‘춤사위로 메시지 전달’

▲ 춤꾼배우 박혜준, 그녀는 몸짓으로 표현된 영화의 결말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하나의 예술작품을 내놓을 때 ‘마지막 작업’은 작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이 완성되려면 마무리가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작업이 잘 끝나면 ‘화룡점정(畵龍點睛)’이지만, 잘못되면 ‘유야무야(有耶無耶)’이고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 만다. 큰 흐름에서 보면 인생살이의 여정과 같다. 풍요롭고 주목받으며 화려하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 말년이 추하면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인생일터이니 말이다.

흔히 “우리의 삶은 영화와 같다”라고 말한다. 지금의 단편이 모여 일생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줄거리’가 있는 인생, 목표가 뚜렷한 삶을 살기 원한다. 영화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소위 스토리텔링이 합리적이고,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작업에 영화작가들이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평론가들은 물론 영화애호가들은 영화가 어떻게 끝나는가에 주목한다. 마지막 몇 분에 담긴, 라스트 장면에서 그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알기에 영화감독들은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자신의 연출 역량을 쏟아 붓는다. 권선징악, 해피앤딩, 장렬한 죽음, 애절한 이별, 훈훈한 화해, 완전한 파괴 등등의 수법이 등장한다.

영화가 끝나고 장내에 불이 켜지면, 관객은 이 결말 부분의 성과에 따라 여러 반응을 나타낸다. 대미를 장식했다, 방점을 찍었다, 엄청난 반전이다, 찜찜하기 짝이 없다, 코미디가 됐네, 뭔 얘기야 헛갈리네 등등으로 박수를 치기도 하고, 돈이 아깝다며 툴툴 거리기도 한다. 이 반응은 입소문이 되고, 흥행의 성공여부로 이어진다.

개봉을 앞둔 영화 ‘원죄’(감독 문신구)의 마지막 장면의 표현 방법은 특별하다. 배우들의 열연이나 스토리의 반전에 의한 메시지의 축약이 아니라 느닷없이 현대무용이 등장, 마지막 5분여를 끌고 간다. 남녀 한 쌍의 무용수가 출연, 춤사위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장면은 한 호흡으로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Long take)수법으로 촬영됐다.

‘원죄’는 ‘신성모독’이란 이유로 현재 천주교단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영화다.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고 나는 그 하나님을 심판한다”라는 포스터 문구만 보아도 이 영화가 얼마나 ‘발칙하고 무모한 작품’(김정겸 한국외대 객원교수)인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원죄를 놓고 창조주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주제 의식을 갖고 접근한 영화다.

어릴 적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성폭행)를 입고 종신수녀의 길을 택한 수녀(김산옥), 선천성 소아마비 장애인인 남자(백승철), 뇌전증(간질병)을 앓고 있는 남자의 딸(이현주)이 ‘원죄’의 주인공이다. 영화는 이들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누가 가해자이고 죄는 누구의 죄이며 무엇이 죄인지, 죄의 현상과 본질을 되묻고 있다.

영화는 딸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딸은 자살하고, 구원에 나서지 못한 수녀는 파계를 선택하는 결말로 치닫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춤을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한다. 극중 부녀로 나오는 한 쌍의 남녀가 마스크를 쓴 무용수로 나와 춤사위를 보이고, 시간이 지난 뒤 마스크를 벗고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에필로그는 완성된다.

춤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신구 감독은 이 난제를 안무가 박혜준에게 일임했다. 박혜준은 영화연극계에서 배우로도 활동하는 춤꾼배우이다. 수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했고, 이번 여름에는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연극 ‘리어왕’에 고너릴로 열연해 찬사를 받았다. 대학에서는 한국무용을, 대학원에서는 언론학을 전공한 전천후 문화예술인이다.

춤으로 풀어낸 ‘원죄’의 주제 의식에 대해 박혜준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대사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저 힌트를 줄 수밖에 없다. 사실 영화에서 대사라는 것도 뭔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춤이 필요했다.”라고 밝혔다.

‘원죄’에서 한 쌍의 남녀는 그들의 춤사위만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반복되는 턴(회전)동작과 마스크를 벗고 웃는 장면에서 원죄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표현된다. 그들의 몸이 대사를 대신한 언어가 된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몸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말(대사)을 대신하는 무용의 감정은 새로운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무용수로 변신한 배우들은 광목 소재의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광목은 망자가 저승길에서 입는 속옷이다. 안무를 지도한 박혜준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의 광목은 죽음을 감싸는 포용의 의미로 쓰인다. 그 춤사위에 어우러지는 음악, 배경이 되는 드넓은 백사장과 푸른 바다, 여기서 관객은 어떠한 연출의 테크닉을 머리로 확인할 사이도 없이 눈으로 경험한다. 이 장면들을 통해 관객은 극중 인물들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기에 이른다.

한순간도 영화라는 자의식을 놓치지 않는 감독 문신구의 의도에 따라 춤꾼배우 박혜준은 단순히 보여주기에 머무르지 않고 영화만의 능력으로 무대 위 무용을 적극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원죄’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뤄진 스토리의 끝을, 무대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방식을 통해 무용을 영화라는 장르 내에서 새롭게 완성해냈다.

박혜준은 “몸짓으로 표현된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저게 무슨 의미일까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바란다. 그러면 머리만 아프고, 특히 현대무용은 어렵기만 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지 말고 그냥 마음으로 느끼라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영화평론가 김윤겸은 “박혜준이 춤으로 해석해낸 마지막 장면, 한 쌍의 남녀가 춤을 통해 행복해하는 그 순간은 언제보아도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장면이었다.”라고 말한다.

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영화는 이야기를 통해 그 움직여진 마음을 포착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원죄’처럼 춤으로 작품의 메시지가 응축된 영화를 보며 때때로 더욱 무용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영화감독 문신구와 춤꾼배우 박혜준은 기존의 영화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의 결말 장면을 보면서 관계자들은 박혜준에게서 미국의 안무가이자 행위예술가이며 여성감독인 이본 레이너를 떠올린다. 이본 레이너는 그녀의 롤모델이었다. 박혜준은 “이본 레이너처럼 ‘예술과 미디어의 융복합 작업’을 통해 영화와 연극 그리고 무용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 본다.

윤상길 컬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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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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