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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소설 제24화] 세 가지 실수

기사승인 2018.05.17  16: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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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만날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유선호, 그는 서울과 동경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고향 친구인 그는 성격이 강해 윗사람들과 충돌이 잦아 승진 기회를 놓치기 일쑤였다. 그에게 적당히 넘어갈 건 넘어가라고 충고하면 ‘알았어’ 한 마디로 끝이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입사 칠 년째의 여름이었다. 전후 설명도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퇴근 후 술 한 잔 하자고 전화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은 이 년이 지난 초겨울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일본에 있었어. 미국의 스포츠용 의류회사인데 그냥 먹고살 만해.”

그는 일본본부장이라며 그간의 근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느닷없이 나타난 그를 무조건 환영할 수 없었다. 이 친구가 느닷없이 왜 찾아왔을까, 경계심부터 밀려왔다.

“재미가 좋다며? 중국과 동남아에서.”

그는 회사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건 다 알고 왔다는 투였다.

“재미는 무슨…….”

그의 속셈을 알 수 없어 말꼬리를 감췄다.

“뭐야, 이거? 날 경계하는 건가?”

“헛소리 그만해. 이젠 중고 의류도 한물가서 업종을 바꿀 생각이야.”

“업종을 바꾼다?”녀석에게 말꼬리를 잡혔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의 경험이지만, 연락 없다가 불쑥 찾아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거절하기 곤란한 부탁만 했다.

“선약이 있어. 우리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지.”

“그러지 뭐. 우리 회사의 제품안내서를 놓고 갈 테니 살펴봐. 내 파격적으로 밀어줄게.”

그는 이쪽의 경계심을 못 읽었을 리 없는데도 기분 상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한 표정으로 머무는 호텔의 객실까지 메모해 주었다. 그가 나간 후 잠시 옛날의 모습을 떠올렸다. 언행이 강했던 그는 지나치리만큼 능변으로 변해 있었다. 상대방을 긴장시키던 눈길도 은근한 모습으로 변해 누구에게든 호감 받기에 충분했다.

그의 변화를 냉정하게 읽었어야 했어. 그게 첫 번째 실수였어.

커피숍을 나와 인파 속으로 묻힐 때 현기증이 밀려왔다. 은행과 거래처 채권자들에게 집과 회사의 모든 것을 압류당했다. 회사의 임대보증금 역시 채권자에게 포기각서를 써준 상황이었다. 며칠 후면 거리로 나앉아야 했다.

유선호가 다시 찾아온 것은 한 달 후였다. 그가 ‘꼭 한 달만이야.’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한 달 전의 만남조차 기억하지 못할 뻔 했다.

“나가자. 소개해 줄 일본 놈도 있고.”

그는 막무가내로 끌어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아담한 한옥이었다. 전문적인 유흥업소는 아니었다. 삼십 대 중반의 여자가 눈치껏 장사하는, 소위 무허가 한식집이었다.

“요즘 이 집 신세를 지고 있어. 호텔은 체질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그는 여주인과 말을 놓았다. 여자도 그를 스스럼없이 대하며 술상을 차려냈다.

“자! 우리 먼저 시작하자. 일본 친구는 좀 있어야 올 거야.”

그는 서울지사 설립계획을 상세히 설명하며 나를 미국 본사에 추천하겠다고 했다. 너는 이미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가지고 있으니 본사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답은 나중에 해. 미국 본사의 연락처를 줄 테니 확인한 후 대답해. 너라는 놈은 내가 잘 알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놈이라는 거.”

그는 관련 서류를 내일 회사로 보내줄 터이니 확인해 보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사업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노는데 푹 빠졌다. 아가씨들이 들어오면서 술판이 질퍽하게 변했다. 약속 시각보다 늦게 나타난 사십 대 초반의 다카하시도 노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주위의 눈길에 신경 쓰지 않았다.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는 게 자기의 인생철학이라며 미친 사람처럼 법석을 떨었다.

다음날 열 시경이었다. 유선호는 인편에 보내주겠다던 관련 서류를 직접 들고 나타났다.

“사흘 후 동경으로 돌아갈 거야. 그 안에 영문 이력서와 회사 소개서도 함께 줘. 미국 본사에 보내야 하니까.”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회사의 발전 기틀을 마련하라고 충고까지 한 그는 바쁘다며 서둘러 나갔다. 그가 책상에 던져놓은 서류를 살펴보다가 일본과 미국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양쪽 다 회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러나 서울지사장 자리를 맡는다고 해서 거액을 투자하는 것도 아니어서 가볍게 넘겼다. 미국 본사의 조건을 기다렸다가 가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으므로 우선 영문이력서와 회사 소개서를 작성했다.

투자가 적다고 적당히 넘어간 게 두 번째 실수였어.

종묘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자리가 없었다. 종묘공원은 노인들로 가득했다.

당시 인맥을 통해 미국 본사와 일본 본부를 알아봤자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애당초 서울지사장 자리를 거부하고 그와 거리를 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물어물하는 사이 그에게 속아 일 년도 안 돼 회사가 거덜 났다.

그를 설마 하면서도 욕심냈던 게 세 번째 잘못이었어.

그는 한국시장 개척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파격적인 가격으로 스포츠웨어를 공급했다. 주문한 물량보다 더 많이 보내주고, 일본에서 직접 날아와 영업지도까지 하는 등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파격적인 지원은 그의 함정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나와 직원들은 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었다. 회사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고 축제 분위기였다.

우리가 앞뒤 못 가리고 들떠있을 때 유선호는 두 가지 사기를 동시에 벌이고 있었다. 그는 회사의 명의를 도용한 제2금융권의 대출이었고, 또 하나는 일본과 미국으로 컴퓨터 칩을 대량 수출하여 제삼의 장소로 빼돌리는 것이었다.

유선호의 사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제2금융권이든 칩 생산업자이든 완벽한 서류에 속아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나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제2금융권과 칩 생산회사의 친구에게도 접근하여 감쪽같이 속였다.

그가 미국 본사에 급한 일이 있다며 출국한 며칠 뒤였다. 제2금융권 법무 담당자와 칩 생산업자가 회사로 들이닥쳤다. 그들로부터 모든 얘기를 듣고 서류를 확인했을 때 하늘이 까맣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나를 유선호와 한통속으로 묶어 경찰서에 고발하는 한편 채권 확보를 위한 법적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그들의 고발로 일단 구속되었다가 불구속 조사를 받는 사이 회사는 엉망진창이 됐다. 그동안 외상으로 물품을 공급해 주었던 의류업자들까지 합세하면서 회사는 완전히 쑥밭이 됐다.

사기가 아니라는, 나도 피해자라는 법적 대응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이미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유선호가 미국으로 잠적하고 회사 직원들까지 다 떠난 상황에서 강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다. 포기한다고 채무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선 채권자들의 온갖 협박과 법의 압박으로부터 최소한 몸만이라도 빠져나오고 싶었다. 가족들이 불쌍했지만, 처가에 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며칠 후면 집도 비워 주어야 했다. 시골의 먼 친척이 당분간 내려와 있으라고 하지만, 갈 수가 없었다. 유선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일본 거주의 부인마저 아이들과 함께 잠적했다. 그는 철저하게 주위 사람들의 등치고 사라졌다. 어쩌면 그를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못 만날지 모른다. 설령 만난다 해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절망, 그조차 사치스러운 현실에 그대로 떠밀려가는 것이 내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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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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