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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푸념에세이 104화] 만산홍엽이로다

기사승인 2018.11.07  09: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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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와 새로운 길 가는 최고의 행복

[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쩍벌녀’란다.

사진 속을 들여다보며 끽끽 웃어대는 품이 맘에 안 든다. 손자를 업을 때는 몰랐는데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일어서려니 그리된 것을 무슨 꺼리라도 잡은 양 놀려댄다.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설렘도 없다. 살기에 허둥지둥 하다보면 민낯도 보이고 치마보다 몸빼 바지가 편안해진다. 시부모 모시고 자식 키우기도 버거운데, 철없는 큰아들까지 건사하려면 얼굴 찍어 바를 새가 어디 있는가. 해도 해도 표가 안 나는 집안 살림에 틈틈이 일까지 하려면 겉치장에는 신경도 못 쓴다.

“얘! 그래서 제2의 인생이라 했나 봐. 손자 데리고 동네 근린공원 갔는데. 그 녀석이 낙엽 밟는 소리를 과자 부스러지는 소리라는 거야. 깡충거리며 신나서 소리치는데, 나까지 기분이 좋아 지는 거 있지. 영감보다 훨씬 낫지.”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함께 암송하며 걸었던 그 옛날이 그리워지며 영감을 탓해본들 그 시절이 돌아오나. 손자와 노는 낙엽길은 제2의 인생을 열어준다. 추풍낙엽이 아니라 달콤한 과자라 하지 않던가.

책갈피에 단풍잎 끼워 눌러놨다가 편지지 한쪽에 눌린 단풍잎 붙여 보내던 소녀는 가고 없다. 이제 늙어 손자와 다시 보는 단풍은 푸릇푸릇하기조차 하다.

“그러긴 하네. 옛날 문풍지에 단풍잎 붙이며 겨울 채비 하던 시절이 아득하다.”

가을걷이 다 마치고 나면 집안에 문마다 다 떼어낸다. 문짝 위에 물 뿌려 창호지 뜯어내고 다시 말려 새 창호지를 바른다. 손잡이 근처에 단풍잎 서너 장을 모양 나게 붙이고 다시 그 위에 창호지를 발라 찢어지는 것도 방지하지만, 운치를 살려주는 예스러운 멋이 있었다. 이젠 달빛 받은 단풍잎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건가…

추풍낙엽처럼 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그러나 만산홍엽 즐기며 손자와 새로운 길을 가는 건 최고의 행복이다.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노경민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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