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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사유(思惟)의 창 8회] 생명은 아름답다

기사승인 2019.03.05  08: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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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에서 지저귀는 한 마리 새도 경이롭다

[골프타임즈=전미야 작가] 생명이 아름다운 것은 생동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러기에 유한한 때문이기도 하다. 조화보다 생화가 아름답다.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진 꽃이라 해도 변화없이 마냥 지속되면 질려 싫증이 나게 마련이니 며칠이면 지고 말 유한성의 생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변화를 겪고 그러면서 사라져 간다. 그 변화는 곧 아름다움의 발산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발산시키고 사라져가는 생명들 가운데 으뜸은 사람이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가치를 부여해 노래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는커녕 파괴자로 나서서 온갖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지구 생성 이래 수십억 년 동안 생물이 번성하며 이루어 온 자연을 한순간에 파헤치고 오염시키는 게 예삿일이 돼버렸다. 어디 그것뿐인가? 문명의 위기라 하여 만들어낸 온갖 것들로 인해 자신들은 물론 다른 생명들에게 살상을 입히고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더러는 사악의 거품을 물고 아무 죄 없는 동물을 학대하고 자신이 애지중지 기르던 애완동물도 한 줌 가책 없이 유기해버린다. 공원에 가보면 발가락 없는 비둘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도심이나 주택가의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하는 고양이와 그것들의 음산한 울음소리를 듣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의 배에서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오고, 엊그제만 해도 푸른 숲을 이루던 산허리는 골프장이나 택지조성 공사로 파헤쳐져 뻘건 속살을 드러내기가 일쑤다. 거기 뿌리를 내렸던 많은 식물들과 그 숲에 터를 잡고 살던 많은 곤충이나 여타의 동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숲이었고, 그 자체로 생명을 품었던 기억을 잊어버린 뻘건 땅은 도리어 사람들의 눈을 할퀴고, 그러면 사람은 또다시 파괴자가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아는 사람 중에 길고양이를 몇 마리 데려다 키우고 날아드는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 늦은 밤길에서 애처롭게 우는 길고양이 새끼를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데려왔는데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아파서 끌어안고 며칠씩 동물병원을 오간 끝에 살려가지고는 이미 그런 식으로 들어온 몇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기른다. 날아온 비둘기의 발가락이 잘려나간 게 안타까워 모이를 던져주다 보니 다른 비둘기까지 날아들어 한 달 사료 값만도 만만찮게 들어간다고 한다.

지구는 모든 생명들이 공존하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파괴자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길을 나서보자. 보이는 모든 생명들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바람 스치는 길가의 풀 한 포기도,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지저귀는 한 마리 새도 생각할수록 경이롭기 그지없다. 모두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생명들, 우리는 그것들을 노래해야 한다.

그림=김태원 화가
전미야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전미야 작가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학예술의 다재다능한 작가로서 시, 수필, 소설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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