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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사유(思惟)의 창 10회] 무아(無我)의 눈물

기사승인 2019.03.19  07: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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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빈 공간들을 메워주는 치유제

[골프타임즈=전미야 작가] 문득, 지금은 없어졌다는 지리산 청학동 무아정(無我亭)을 찾아가던 일이 떠오른다. 왠지 그 ‘무아’라는 말부터도 마음이 끌렸던 것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를 놓아버린 채 마구 눈물을 쏟아냈다. 정작의 무아정에는 닿기도 전인 청암댐 부근에서의 일이었다. 한창 달려가다가 차를 세우고는 그렇게 눈물을 마구 쏟아냈던 것이다. 무아라는 말 그대로 그때는 정말이지 나는 없었고 울음만이 가득 차올라 넘쳤었다.

청암댐 호수에는 산 그림자가 깊게 잠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기만 한데 왜 그렇게 정신 나간 듯이 눈물을 쏟아내게 되었던 것일까? 너무나 아름다워서였을까? 그도 분명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그렇게 한두 마디로는 이야기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을 터였다.

그 울음을 어찌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 물론 울음을 설명하려 든다는 것 자체가 잘못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이고, 거기에는 울음을 미리 준비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진작부터도 울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그러던 차에 어떤 기회가 주어지자 그만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게 아니겠는가? 남들 보기에는 그게 무슨 기회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한 줌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 것도 기회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눈물에는 종류도 많고 여러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지만 그 기능 면에서 우리에게 정화작용을 한다는 점은 분명할 터다. 눈물은 나를 내려놓게 한다. 나를 내려놓지 않고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 나를 내려놓을 때에만이 비로소 눈물을, 울음을 울 수가 있는 것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고 그럼으로써 나를 비워내는 작업인 것이다. 내 안에 쌓였던 욕심들, 내 안에 쌓였던 슬픔들, 내 안에 쌓였던 아픔과 분노들이 흘리는 눈물에 씻겨 나간다.

우리는 아파도 울고, 슬퍼도 울고, 너무 기뻐도 울고, 분노하거나 억울해도 운다. 그렇게 울며 눈물을 흘리다보면 어느새 격했던 감정들이 누그러지곤 한다. 기쁨의 눈물도 마찬가지다.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기쁨에 울음이 터져 눈물을 흘리다 보면 한쪽으로만 몰렸던 기쁨은 넓게 퍼져 마음의 빈 공간들을 메워준다. 그렇게 본다면 눈물은 생체의 자연발생적인 치유제가 아닐까? 눈물이 진주라지만 그보다 더한 진액일 것이고, 가장 값진 것은 슬픔을 당한 이웃을 위해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나날이 각박해져 가는 세상, 나를 내려놓는,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을 위한 진정한 눈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무아정으로 가던 길에 쏟았던 눈물. 굳이 철학적인 견지에서 보는 무아(無我)가 아닐지라도 나를 내려놓는 내 속의 무아정이 바로 눈물일 것이다.

그림=김태원 화가
전미야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전미야 작가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학예술의 다재다능한 작가로서 시, 수필, 소설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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