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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스타톡톡] ‘읍내 떡뱅이’로 뭉친 소설가 박범신과 영화감독 진명

기사승인 2019.03.23  15: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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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논산’ 동향이며 동문 선후배 끈끈한 인연...영화 완성도 높이는 데 강점

▲ 소설가 박범신(왼쪽)과 영화감독 진명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극영화 ‘갱경이 떡삥이’(제작 제에엠픽쳐스)는 이제 시작이다. 제목이 이채롭다. ‘갱경이’는 충남 논산시 강경읍 사람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강경 사람’이고 ‘떡삥이’는 ‘떡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서 ‘떡을 좋아한다’는 뜻은 헐벗고 배곯던 시절 ‘먹고 사는 일’이 삶의 전부였던 밑바닥 인생을 가리킨다. ‘갱경이 떡삥이’는 ‘강경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이다.

원작은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소설가 박범신의 중편소설 ‘읍내 떡뱅이’이다. 1979년 발표된 중·단편 모음집 ‘식구’에 게재된 작품이다. 영화는 ‘읍내’를 ‘갱경이’로, ‘떡뱅이’를 ‘떡삥이’로 바꾸었다. 작품이 품은 절절함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이다. 원작의 ‘떡뱅이’에서 ‘~뱅이’의 사전적 의미는 ‘앉은뱅이’나 은어로 쓰이는 ‘좆뱅이’처럼 “주로 좋지 않은 행동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그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나 사물’의 뜻과 얕잡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말”이다. 작품 속 떡뱅이의 진솔한 삶이 대중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감독의 뜻에 따라 영화 제목은 ‘떡삥이’로 바꾸었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영화 ‘갱경이 떡삥이’ 연출은 진명 감독이 맡는다. 2018년 발표된 ‘천사의 시간’에 이은 두 번째 연출작이다. 데뷔작 ‘천사의 시간’은 정통 청춘 멜로 드라마였는데,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독립영화·예술영화 두 분야에서 공인 추천되어 주목을 받았다. ‘갱경이 떡삥이’는 원작이 지닌 향토문예물로서의 예술성은 유지하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삶의 투쟁을 통한 ‘영화적 재미’로 포장할 예정이다. “작품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제작진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갱경이 떡삥이’의 무대는 충남 논산시 강경읍. 원작자 박범신과 영화감독 진명, 두 사람은 이곳이 고향이다. 여기에 중학교 선후배 사이가 된다. 동향에 동문, 끈끈한 인연이다. 한국 문학계의 거목인 박범신 작가가 아직은 유명세가 덜 한 진명 감독에게 연출을 선뜻 허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명 감독은 30여년 영화계에서 제작자로, PD로 이름이 잘 알려진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이다. 무엇보다 촬영이 이뤄질 강경읍에 대해 그들만큼 잘 아는 콤비가 없다는 사실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강점으로 작용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길목, 강경읍의 퇴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다. 한때 평양, 대구와 함께 이 땅의 3대 시장 중 한 곳이었던 강경포구의 퇴락한 모습을 그린다. 강경은 1920년대에 전기 수도가 들어왔고 한호농공은행(후일 한일은행) 등 전국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은행도 세 곳이나 있었다. 이때 들어선 경찰서(현 논산경찰서)와 법원(현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은 지금도 논산 시내로 옮겨가지 않고 강경에 남았다. 요즘은 ‘논산 강경’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강경 논산’이었다.

논산뿐만 아니라 군산, 부여, 공주, 이리(익산), 청주 등이 전부 강경권역으로 구분됐던 강경이다. 강경의 풍요는 문학 작품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원이 돈을 벌기 위해 강경장에서 소금을 판다. 강경장의 규모와 명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가 김주영의 ‘객주’에도 강경의 근대화가 녹아 있다. 물론 박범신의 작품 여러 편이 강경을 무대로 펼쳐진다. 이런 강경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때 인구수가 3만명을 넘었고, 유동인구는 10만명이 이르렀으나 지금은 1만명 남짓의 소읍으로 모습이 초라해졌다. 그 변화의 시대를 어렵게 살아온 강경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박범신 작가의 취재를 통해 실존인물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강경 포구의 토굴에서 막일꾼으로 삶을 영위하는 황영감. 그가 가슴으로 키운 백치소녀 떡삥이. 황영감은 떡삥이를 좋은 남자에게 시집보내고 강경의 쇄락과 함께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꿈이다. 각설이패의 우두머리 이쁜이와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만 쇄락한 강경포구의 인심은 그리 녹녹치 않다. 순진무구한 떡삥이를 탐하는 굶주린 이리떼의 모습은 거짓과 배신, 탐욕과 폭력 등이 어우러진 아수라 지옥이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사람들의 음습한 생각들이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강경포구를 ‘가뭄에 갈라진 척박한 땅’으로 만들어버린다. 지금은 그 모습을 ‘근대화의 유산’이라고 포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흉포해진 인성은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대중이 진명 감독의 연출력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충분히 고민하면서 당시 강경읍과 갱경이들이 직면해 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정리해 영상에 담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가 갖고 있는 무게감과 화제성 때문인지 많은 연기자들이 출연 희망을 내비치는 가운데 제작진은 수차례의 오디션 끝에 주요 배역을 결정했다. 주인공 황영감은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로 제71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와 제56회 히혼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월드스타 기주봉 배우가 연기한다. 각설이패 우두머리 이쁜이는 아이돌그룹 FT아일랜드의 막내 보컬리스트 송승현이 맡았다. 그는 연극 ‘여도’와 뮤지컬 ‘잭 더 리퍼’, ‘삼총사’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본격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원로배우 정재진, JTBC ‘리갈 하이’에서 방대한 역으로 인기몰이 중인 김병옥, 모노드라마 ‘술 한 잔 따라주세요’ 등을 통해 선 굵은 연기를 입증한 이달형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떡삥이 역할은 제작진이 발표하지 않고 있다. ‘깜짝 놀랄 배우’라는 귀띔만 있을 뿐이다. 노이즈마케팅이든, 올해 최고의 신데렐라 탄생이든, 관심가질 만한 대목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번성하기도 하고, 쇄락하기도 하는 것이 이 땅의 숙명이다. 조선후기 원산과 함께 2대 포구로 번성했던 강경포구. 지금은 인구수 1만여명 남짓한 쇠락한 읍내를 에워싼 제방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있어 그나마 이곳이 예전에 포구가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영욕의 세월을 버텨낸 강경 읍내 사람들의 어제를 영화 ‘갱경이 떡삥이’가 어떻게 재현해 낼 것인가, 그 끝을 지켜볼 일이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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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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