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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스타톡톡] 영화감독 경석호, 협객 시리즈로 장르 영화 제작자 변신

기사승인 2019.07.03  15: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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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사 재조명...억압받았던 시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열사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B급영화’를 만든다고 ‘B급감독’은 아니다. ‘B급’이란 공통분모만으로 판단하면 ‘B급영화=B급감독’일 수 있다. ‘B급 영화’는 단기간 촬영과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므로(위키백과), 이는 영화 제작의 환경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B급감독’의 ‘B급’은 그레이드의 문제이다.

한국 영화계는 ‘B급영화’가 훨씬 더 많이 제작된다. 제작 주체인 제작자나 감독은 물론 이 분야에 참여하는 스태프나 배우들의 숫자도 당연히 더 많다. 영화감독 경석호. 그는 우리나라에서 ‘B급영화’를 가장 많이 연출한 감독으로 꼽힌다. 1980년대 조감독 생활부터 그동안 연출한 작품이, 본인도 정확히 기억 못하지만 대략 500여편에 이른다. 수치만 보아도 그는 예사롭지 않은 감독이다.

많은 중견감독들이 그렇듯 그도 프랑스문화원 세대이다. 프랑스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고, 출발은 어린이영화였다. 심형래, 이봉원 같은 개그맨들과 함께 30여 편의 작품을 찍었다. 그 한편으로 전시영상, 뮤직비디오, 광고영상 등의 연출도 맡았다. 하지만 본격 극영화 감독으로의 진입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B급영화’의 길을 택했다.

그는 이름만으로도 존경받는 유명 영화감독의 조연출로 현장을 익혔다. 영화계 동료들은 이 같은 연출부 경력과 그의 손을 거친 5백여편의 ‘B급영화’를 통해 그의 탄탄한 연출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경석호 감독은 여전히 ‘B급영화인’으로 매도되는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에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들을 힘들어한다.

영화사 ‘인연’의 대표이기도 한 경석호 감독은 자신을 ‘생계형 감독’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가정을 유지하고, 회사의 여러 스태프의 생활을 책임져야할 현실에서 돈이 되는 일감 앞에서 작품의 퀄리티를 따질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어린이 영화(‘심형래와 괴도 루팡’)에서 문예물(‘분녀’ ‘옹녀뎐’)에 심지어 성인영화(‘맛’ ‘착한여자’)까지 닥치는 대로 연출을 맡아왔다.

이제 경석호 감독은 ‘B급’이란 시선에서 벗어나려 한다. ‘B급영화’를 만드는 ‘A급감독’의 모습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후배 감독들에게 메가폰을 넘겨주고 자신은 제작자로 ‘A급감독’이 만들어낸 ‘B급영화’를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그가 선택한 첫 단계는 장르 영화 제작. 우리나라의 주먹사를 재조명하는 ‘협객’영화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했다.

협객(俠客)은 ‘의롭고 씩씩한 기개가 있는 사람’을 이른다. 일제 강점기 주먹 하나로 서민의 울분을 대신했던 사람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국내외 전투 현장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협객들이 주인공으로 소개된다. 전혀 자료가 없는 숨은 협객까지 찾는 일종의 ‘발굴 주먹사(史)’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억압받았던 시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주먹이며 열사들이다.

그의 협객 시리즈에는 만주 봉천을 주름잡았던 평양 호바디(호랑이의 평양 사투리) 이상대, 최배달의 스승으로 알려진 천승, 1930년대 종로 1세대 주먹왕 구마적, 스나이퍼 남지연, 소공동 신사 이화룡, 쌍권총 김장옥, 음유협객 박주용 등이 매월 한편씩 제작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지난 6월에는 시리즈 첫 작품 ‘독불장군 엄동욱’의 촬영을 마쳤다. 7월 작품으로는 일본 무도계를 평정한 최영의(최배달)의 스승으로 알려진 ‘미지의 협객’ 천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촬영 중이다. 경 감독은 이를 통해 신진 감독과 배우들을 과감히 발굴, ‘B급영화’에서도 ‘A급영화인’이 탄생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이겠다고 했다.

이 시리즈에서 경석호 감독이 강조하는 내용은 격동하는 역사를 온전히 자기 삶으로 감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를 현미경으로 보듯 자세히 눈여겨보고 기록하려 한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협객 시리즈에서는 이야기를 하는 자(영화작가)와 듣는 자(관객)의 긴장 관계에서 다양한 의미가 배태될 것으로 영화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외형상 발전하는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안정’이 결핍되어 있다. 1000만 영화가 늘어나고, 세계적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아도 한국의 영화인은 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경석호 감독도 그렇다. 우리 영화인들의 키워드는 ‘불안’과 ‘걱정’이다. 그 결과 수많은 영화인들이 알바인생을 살아야 하고 또 누구는 아예 전업을 택한다. 영화인으로 살아온 팍팍한 세월이 그렇게 그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B급감독’이 ‘B급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금 ‘A급감독’으로 떵떵거리는 그들도 ‘B급영화’를 연출했고, 지금 ‘B급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에 ‘A급감독’은 분명히 탄생한다. A급이던 B급이던 ‘역지사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영화계는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다. 경석호 감독이 영화산업 측면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도 ‘B급영화’ 시리즈 제작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그는 대형극장의 스크린이든 IPTV VOD 서비스이든 관객 모두를 ‘A급관객’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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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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