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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15회] 화양연화 같은 시간의 거리에서

기사승인 2020.12.21  0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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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고동창 그녀와의 이십여 년째 침묵 해후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또 하나의 거대한 역사가 해의 그림자를 품고 넘어가는 바다, 그 끝에서 극복의 힘이 강한 우리는 왜 이리 불안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누구의 몫인지 모를 희망은 그저 꿈속처럼 희미해져만 간다. 졸업시즌이다. 아득히 먼 옛적에는 얼마나 많은 반짝임으로 설레었던 십이월이던가. 불안정한 시대에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는 지금은 어둡고 우울한 계절일 뿐이다.

지나간 추억만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만 같은 연말, 그녀를 처음 본 곳은 그런 추운 연말연시가 한창이던 어느 거리에서였다. 아파트 단지와 백화점, 지하철역사와 만나는 아울렛과 대형마트로 북적이는 중심상가 어디쯤에서 그녀를 마주친 그때는 점심시간쯤이었다.

동료들과 어디를 갈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식당 전단지를 나눠주며 ‘이쪽으로 오세요. 오늘 개업한 식당인데 처음 오시면 가격 할인도 해 주고 음식도 맛있다’면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우리도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서 식당으로 들어갔고 우리를 안내해 준 후에 그녀는 다시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여고동창이었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냥 지나쳤지만 나중에라도 인사를 해야지 하며 그날은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가끔씩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그녀를 보게 되었는데, 그녀도 나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우연처럼 가끔씩 보는 우리는 매번 그냥 지나쳐가기만 했다.

다시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이십여 년이 되어 간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간혹 그곳을 지나갈 때 여전히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그녀를 본다. 멀리서 지나쳐 가지만 그녀도 나도 속으로는 아마 수십 번은 더 인사도 하고 아는 척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묘한 웃음이 나오곤 한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을 그 삼년의 학창시절을 친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함께 보냈었는데……,우리는 무엇이 어색해서 그 흔한 아는 척도 한 번 안 하고 수많은 해를 넘기고 말았는지 모른다.

또 다시 연말연시,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올해이지만, 그래서 더욱더 사람들은 추억을 뒤지며 울고 웃고 하는 것이 아닐까. 졸업시즌이 되면 누구나 한 번씩 추억에 빠지듯이 말이다. 그래, 웃으면서 다한 걸로 하자. 다 지나간 걸로 하자. 수십 년의 세월을 거저 지나 온 것은 아니니 하며 자위를 해 본다.

지금도 그 거리를 지날 때, 가끔씩 여전한 그녀를 보곤 한다. 그래서 그 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펴보곤 한다. 화영연화 같은 그 오래 된 시간 속에서 추억의 따뜻한 바람이 우리의 꿈과 함께 펄럭일 것 같은 그 거리에서 말이다.

추억의 긴 그림자여 한 번 더 우리의 꿈을 덥혀다오
뜨거운 눈물이 무엇인지 다시 느낄 수 있게…박소향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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