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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14회] 침묵에 기대어 떠나는

기사승인 2020.12.14  01: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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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이여! 나를 데리고 어디든 가라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어느 골, 어느 들, 어느 강이든 침묵의 두께로 사랑을 재는 계절 겨울. 꽁꽁 언 허공만큼 세상의 둘레도 일순간 얼려 버리는 겨울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나이테만큼 커지는 두려움과 감당할 수 없는 무엇으로 한 번씩 그렇게 영혼을 앓으며 새로운 길을 가게 한다.

세찬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십이월의 험악한 바람소리도 견디게 하고, 거대한 자연이 가만히 침묵하는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고락을 되새기게 해 준다. 사람 사는 세상의 모든 이치는 삼라만상의 이치이듯,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최선만을 누리게 하는 두려움을 다시 되새겨보게 한다.

우리는 자신을 버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외로운 여로를 혼자서 가는, 아무도 도피할 수 없는 고독한 존재의 본질을 느끼게 해 준다. 작별 인사를 하기 전 마지막 달 십이월은 지독한 침묵의 추위로부터 자신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어떤 숙제를 던지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여운을 남겨 주기도 한다.

먼 길을 떠나며 여행을 하듯, 눈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휘몰아치고 저녁 해마저 저물어 빈 주머니로 밤을 맞이해야 하는 나그네처럼, 우리의 삶도 위기와 고난을 맞으며 성숙해져 간다. 십이월의 매서운 침묵은 그래서 더욱더 우리들 가슴에 와 안기는 것인지 모른다.

어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겨울, 혼자서 떠나는 겨울 여행이야말로 침묵에 기대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가장 깊은 시간이 아닐까. 놓아줄 것은 놓아주고, 체념할 것은 체념하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돌아보는 시간, 그 시간을 위해 십이월은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미덕의 달인지 모른다.

이범선의 ‘오발탄‘에서 주인공은 온갖 현실의 불행한 조건 밑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체득한 인생관은 체념이었기에 ’자기 자신은 신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존재의미를 부인하며 운명 앞에 굴복하는 체념주의자가 된다. 가혹한 운명 앞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이 쳐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받아들인 결론이다.

하지만 의지나 마음이 꺾이고 굴복되어 불안하다 해서 무조건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과 사상을 통하여 우리는 겨울을 지나 봄을 기다리듯 한 줄기 희망을 보며 이 추운 십이월을 견뎌내는 것이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하얀 백지장을 준비해서 그 백지장 위에 새로이 시작되는 무엇인가를 적으며, 외로움 속에서도 은총의 십이월을 보낼 때 강인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아, 친애하는 12월이여, 나를 데리고 어디든 가라.
작별은 이제 식상한 인사만큼 무디니....박소향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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