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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13회] 그 남자 그 여자

기사승인 2021.06.16  08: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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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해도 결혼하는 것이 좋은 게 더 많아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나는 지금 부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둘이 먹을 저녁 준비를 하는 중이고, 언제나 그렇듯 남편은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 산지도 30여 년입니다. 나는 부엌에서, 그는 거실에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각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눈 맞춰가며 알콩달콩 살던 시절은 없었던 듯, 종일 함께 있어도 한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없이도 표정만 보면 그가 뭘 찾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을 하게 됩니다. 세월의 더께만큼 서로의 마음이 가슴에 녹아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0년 세월을 살았다지만, 우리는 서로가 안 맞는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보니 성격도, 생각도, 취미도 극과 극인 것 같습니다. 이토록 다른 게 많으면서도 지금껏 어찌 살아왔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만 그럴까요. 부부 구도를 보면 대부분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사는 걸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사는 건지도 모릅니다. 한 이불 속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관계랄까요.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관계가 바로 부부라는 이름이지 싶습니다.

처음 만나 사귈 때는 가슴 설렌 호기심으로 모든 게 새롭게만 보였습니다. 한시 빨리 부부가 되어 살고 싶어 만난 지 일 년도 안 되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막상 결혼해 살아 보니 눈에 티가 생긴 것인지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들어오면서 내 가슴 밭에는 뾰족한 가시를 이룬 탱자나무만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토끼 같은 자식 재롱에 눈멀어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라는 것은 너무 내내 함께 있으면 도리어 냉각(冷却)되는 것이다’라고 하던 M.E. 몽테뉴의 말씀이 새삼 명언처럼 들립니다. 하루 세끼 챙겨야 하는 일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것도, 반복된 생활에 지친 나에 대한 권태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랑한 부부라 할지라도 시간을 이기지 못합니다. 가슴 절절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실제로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부부가 화성과 금성으로 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도 동전의 양면성 같아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살아 보니 후회하더라도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은 게 더 많습니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박원명화 수필가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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