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14회] 바람 불어 좋은 날

기사승인 2021.07.07  08:40:19

공유
default_news_ad1

-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순리...경이롭게 느껴져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날마다 휴일인 요즘, 우리 부부는 아파트 뒷산을 자주 오르내린다. 산이라고 하지만 가파르지도 않고 오르다가 지칠 만큼 높은 산도 아니다. 산책하기에 적당한 야트막한 산으로 전나무 숲이 우거진 오솔길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반반한 산책길이 나온다. 누구나가 오르내리기가 수월해 늘 주위에 사는 사람들의 산책로로 줄을 잇는다.

오롯한 흙길을 따라 국립묘지 담장을 끼고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운동기구도 즐비하게 늘어선 약수터가 나온다. 산을 자주 찾는 사람에겐 군살 낄 겨를조차 없는 것도 걷고, 운동하고, 푸른 숲이 방산하는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있어도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산바람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하늘도 맑은 코발트블루. 들숨과 날숨을 통해 자연이 주는 맑은 청량제를 마신다. 비탈진 계단 길로 올라서자 무성한 녹음이 성큼 반긴다. 잔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 그늘진 나무터널로 들어간다. 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관할구청에서 여러 가지 편리한 기구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운동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숲길 사이사이에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지나는 사람들을 반기듯 한 아름 꽃다발처럼 무리 지어 피어있다. 나무숲으로 들어갈수록 풀 냄새가 온몸으로 엉겨 붙는다. 나무와 꽃들을 찬탄하며 우리는 끝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덤불 사이로 하얀 찔레꽃이 수줍게 웃고 있다. 예쁜 꽃을 보면 멈추고 들여다보기도 하고 새소리를 들으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오늘처럼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풋풋한 향기를 마신다.

도심 한가운데 집근처 이런 산이 있다는 것만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달마산 안에 있는 국립묘지로 들어가 박대통령 내외가 잠든 곳에 올라가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는 나무들이 숲을 이뤄 산책하는 데도 좋다. 어떤 나무는 꼿꼿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고 어떤 나무는 휘뚜루마뚜루 저 잘난 멋에 취해 사는 것도 있지만 연령들이 잠든 묘비근처는 비교적 잘 정비된 나무들이 사열하듯 줄지어 있다.

산 중턱에 오르자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한숨 돌릴 요량으로 나무 아래 벤치에 앉는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을 춘다.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애잔하기 이를 데 없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도 두어 계절을 보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바빠 한 생을 속절없이 마감하는 것인지. 어떤 불행도 묵묵히 순응하는 자연의 순리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러기에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을까. 타다 남은 젊은 날의 낭만이 문득 시나브로 스쳐 지나간다. 산에 올적마다 귀한 선물을 한 아름 받아가듯 삶의 진리를 배우고 익힌다.

약수터 정상에 오르니 숨이 턱에 차오른다. 약수를 받기위한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약수 한잔을 받아 둘이서 나누어 마신다. 온몸이 짜릿하다. 시원한 물맛이 좋다며 남편은 매번 감탄한다. 운동기구마다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아빠와 아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이 단란한 부자의 표상 같아 바라보는 것만도 행복하다. 벌써 한 게임을 끝낸 두 모녀가 벤치에 앉아 그들 부자의 아름다운 풍경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무 그늘아래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미구에 올 우리부부의 평화롭고 한가한 노년의 풍경화를 상상한다.

산을 낀 아파트를 찾다가 우연히 이곳으로 이사 와 삼십 년을 살고 있다. 마음만 내키면 언제라도 가벼운 차림으로 산을 오를 수 있으니 이 또한 내 삶의 활력제가 된지 오래이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