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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의 샘터조롱박 106회] 보름달 청춘

기사승인 2022.12.08  0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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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좋고 나도 좋아 우리 모두가 하나

▲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나도향 시인이 말했다.

‘초승달은 독부나 철없는 처녀라면 보름달은 여왕. 그믐달은 애인 잃고 쫓겨난 공주’라고 읊었다.

초사흗날 저녁에 서쪽 하늘에 낮게 뜨는 눈썹 모양의 초승달, 새초롬한 여인네의 청초함이 묻어나는 눈썹달이다. 또한 비수 같은 푸른빛을 띤 그믐달에 가슴을 베이었다고 무릇 시인들이 읊었다.

화성이면 뭐하고 토왕성이면 뭘 하겠는가? 달은 달이고 옥토끼도 아직 찾지 못했으니 그냥 계수나무 한 그루에 토끼가 사는 거로 하는 거다. 우리 소원 다 들어주고 한 많은 설움도 풀어주는 달이다.

바쁘게 사느라 보이지 않던 달이 요즘 내 방 창에 찾아 든다. 밝은 달밤, 그것도 둥그런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 속에서 귀천하신 부모님도 만나고 일찍 간 친구 얼굴도 만난다.

어릴 적, 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오던 밤길에 따라오던 둥그런 달. 그 넓고 따뜻했던 등에 엎디어 본 밝은 달빛은 포근했다. 아버지의 등에서는 어른들만의 평온한 냄새가 났고 그 푸근함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아버지의 발자국마다 내 몸이 흔들리면 달도 덩달아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춤추는 달빛 받으며 쌔근쌔근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버지의 등에서 내려선 세상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사는 일 자체가 곡예다. 하늘에 오를 듯 터져 오르는 기쁜 날이 있는가 하면, 낭떠러지 벼랑 끝에 서 있기도 했다. 늙고 작아진 부모님은 나를 크게 해주었고, 작아져 버린 부모님은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뿌린 씨앗은 비바람 속에도 쑥쑥 자라 이제 손자에게 등 내밀며 어부바를 한다. 그 옛날 따뜻했던 그 포근한 세상을 손자에게 내어 주는 나는 보름달 같은 여왕이다. 이지러지고 다시 차오르며 세상을 품은 달. 그 찬 서리 맞은 푸른 서슬의 빛이 있어야 가득 찰 수 있으니 비워야 채워지고 버려야 얻을 수 있다.

이제 아버지의 등에서 내려와 손자를 업고 둥게 둥게 보름달 밤에 춤춘다. 만월 속에 풍요를 품고 떡방아 찧는 토끼 한 마리로 행복하다.

비수를 꺼내 들 용기도 없고 한스러운 그믐달도 싫다. 넉넉하고 풍요로우며 여왕처럼 도도한 보름달이 좋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모두 좋아서 서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타인이 아닌 우리로 살고 싶다. 마음만이라도 가득 차오른 여왕 같은 보름달 청춘으로 살련다.

노경민 작가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노경민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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