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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21]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기사승인 2017.03.20  00: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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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흔적 따윈 얼굴 어디에도 없었다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그래서 지금 뭐하세요?”

“공원에서 풀 베는 일 해요. 시간나면 글도 써요. 원래는 시 쓰는 게 제 꿈이에요.”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같은 글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게 아니라 싫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올케는 “개나 소나 다 작가랍시고 글 쓴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처럼 글 쓰는 아웃사이더를 만나면 개나 소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럽다.

창밖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그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다음이 구미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구미역에 내려서 갈아탄다고 들을 것 같았다.

“아저씨! 다음이 구미래요.”

잠이 들었나 싶어 그를 흔들었다.

“아! 저도 동대구까지 가죠 뭐. 오빠 되시는 분 문상하고 가게요.”

“아니에요, 제사 가신다면서요.” “어차피 제사는 밤에 지내니까, 저녁 안에만 들어가면 되요.”

“그러지 마세요. 뭐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러지 마세요.”

“너무 슬프잖아요, 오빠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래요. 저도 그렇게 죽을까봐 겁나요.”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을 거 같았다. 오빠의 노숙 소식에도 슬프지 않았는데. 아니 슬픔을 애써 외면하고 밀어냈던 거 같다. 슬픔이란 것이 차라리 나와 무관한 사람의 것일 때 더 느껴지는 것 같다. 내게로 오면 그것은 그저 고통인 것이다.

4.
오빠의 장례식장은 종합병원도 아닌, 작은 병원 건물 지하에 있었다. 건물이 우중충 했다. 조문객도 없이, 조그만 빈소 한 쪽에 조카 셋과 올케가 나란히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네 여자가 하나같이 무료하고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슬픔의 흔적 따윈 얼굴 어디에도 없었다.

“왔나?”

들어서자마자 올케가 앉은 채로 아는 체를 했다.

“고모.......”

조카들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청바지와 한얀 면 티셔츠 위에 걸친 검정색 상복이 버거워보였다. 막내는 해벌레 벌어진 치맛자락을 둘둘 감았다 폈다 하며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계속 펄렁거리고 있었다. 한복을 하던 엄마가 그 꼴을 봤으면 바느질자를 휘둘렀을 것이다.

“가시네, 치맛자락 갖고 똥을 싼다. 정신없이 팔랑거리지 좀 말고, 아까보이 저기 끈 있데, 그 끈 갖다가 좀 묶어라!”

서당 개 3년이라더니, 한복장이 시어머니 밑에서 본 게 있어서인지 올케가 한 소리 했다.

“절부터 해라!”

영정 앞에 서니 퍼런 잠바를 입은 오빠가 말없이 나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왜 저런 잠바때기를 입혀놨을까, 양복 입은 사진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좋아서 저리 웃고 있었는지.’

인물도 좋고, 멋쟁이고, 유머감각이 있어 우스갯소리도 잘 했다. 그래서 여자가 많았다. 그 바람에 올케가 낚인 거다. 그런데 오빠는 그걸 악연이라고 했다.

‘가니까 좋아요?’

내가 오빠라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갔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개똥만도 못한 인생도 있는 거다. 이제 오빠는 죽은 덕분에 떡 벌어지게 음식상 받고, 꽃송이에 묻혀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살아서야 가족들한테 이런 대우받을 일이 있겠냐 말이다.

“그냥 여기 와서 악몽을 꾸고 간다 생각하고, 좋은데 가서 잘 계세요. 오빠는, 개꿈 꾼 거예요. 하긴, 뭐, 천당 못 가면 어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지옥 가도 겁날 거 없어요. 이 땅이 지옥이었잖아요”

향을 피우고 속으로 그런 얘기를 했다.

오빠한테 절을 해도 되는 건가? 싶어 주춤했다. 집안에 어른이 없어 누구하나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 예를 행하는 것에 있어선 뭘 하든 가족끼리 의견이 분분했다. 엄마조차 19살에 피난 나와 홀로되어 보고 배운 것이 제대로 없었다. 제사 하나조차 이랬다저랬다 해마다 달랐다.

도움을 청하듯 올케를 쳐다보았다.

“네 번 해라.”

올케가 손가락 네 개를 쳐들며 소근 거렸다.

“고모, 인터넷에서 내가 찾아봤더니 여자는 왼 손을 아래 놓는 거래”

절을 하려고 손을 포개는데 조카가 쪼르르 달려와서 소곤거렸다. 애비 상을 당한 애들이 맞나 싶게 신기한 체험이라도 하는 듯, 입가엔 웃음이 걸려있었다. 젊은 나이에 길거리를 떠돌다 객사한 아비를 앞에 두고 운 흔적은커녕 슬픈 기색이라곤 눈을 닦고 봐도 없었다. ‘빈말로 설운양’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가정사나 세상사에 대체로 냉소적인 나이지만 좀 너무한다 싶어 화가 났다. 나야 그렇다지만 자식 아닌가. 그러는 내 감정도 누군가의 장례처럼 무덤덤했다. 어울리지 않는 이 분위기와, 그 무덤덤한 감정이 너무도 불편했다. 차라리 자기 설움에라도 빠져 울고불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 애잔한 인간이여.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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