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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의 문화 단상] 잣대이야기, 왜 당신 발로 직접 신어보지 않았소

기사승인 2017.09.19  0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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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우연이 현재의 필연이 될 수 없다

▲ (사진출처=유시민의 썰전 유튜브 화면 캡처)

여야(與野)의 잣대는 고무줄, 여당은 야당일 때 주장하던 잣대를 내평개치고, 야당은 여당일 때 들이대던 잣대를 내몰라 ‘무조건 반대부터 하자는 식...소음(騷音)이다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니스트] 간밤의 찬 기운에 두꺼운 이불을 찾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풀잎에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도 벌써 지나서 조석으로 제법 쌀쌀하나 한낮은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출근길 옷 고르기가 고민입니다. 하루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삼을지 애매해서입니다. 오늘은 잣대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우언(寓言) 한 토막입니다. 중국의 춘추시대 정(鄭)나라 사람이 어느 날 장터에 가서 짚신을 한 켤레 새로 장만하려고 새끼줄로 요리조리 자기 발의 치수를 재었습니다. 그리고선 치수를 재어놓은 새끼줄을 앉았던 자리에 놓아두고 장터로 갔습니다.

장터에 도착해 신발을 고르고서야 새끼줄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나 다시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장터로 되돌아오니 이미 장이 파해서 결국 신발을 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딱해서 “왜 당신 발로 직접 신어보지 않았소?”라고 물었더니, 정나라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치수를 믿을지언정 내 발은 못 믿겠소!”

한비자는 이 이야기로 유가의 고루함을 빗댑니다. 유가는 이른바 “언필칭요순(言必稱堯舜)”이라고 입만 떼면 요와 순임금을 일컬으며 옛날 요순시대의 모든 예법이 가장 좋고 옳으니 이에 따라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한비자는 요순의 태평성대는 인구가 희소했던 씨족국가시대에나 가능했지 인구가 많아지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진 후대에는 부적합하다고 본 것 입니다.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어도 감이 저절로 입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냥개에 쫓기다 그루터기에 걸려 목이 부려져 죽은 토끼를 농부가 운 좋게 한 마리 잡았다고 해서 다시 토끼를 그저 주울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우연이 현재의 필연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에 탄 나그네가 등에 찼던 검을 강물에 떨어뜨렸으면 당장 강물에 뛰어들어 검을 찾아야지 떨어뜨린 곳을 뱃전에 표시해두었다가 나루터에 당도하고서야 강물로 뛰어들면 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유가는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고 옛것만 숭상하여 “언필칭요순(言必稱堯舜)”을 고수합니다. 그래서 한비자는 유가가 나라에 도움은커녕 나라를 좀먹는 벌레와 같은 존재라며 유가의 낡은 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주말에 광화문을 지나가다가 박근혜 전(前)대통령의 탄핵이 부당하다고 외치는 시위행렬을 보았습니다. 진보 계열의 시위에 익숙했던 우리 사회에 어느 사이 보수우익의 시위도 익숙한 광경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채로운 것은 시위대가 반복해서 틀어대는 새마을노래였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중-고등시절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때로는 따라 부르길 강요당했던 노래라 처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들을수록 귀에 걸렸습니다.

요즈음 세상은 새벽에 종소리 울리면 야단날 텐데! 교회조차 새벽종을 못 치는데 아직도 새벽종타령일까? 지금 초가집이 어디 있으며, 넓힐 마을길이 어디 있다고! 외국에 가도 우리나라만큼 도로를 넓게 잘 만들어놓은 나라는 드물던데 왜 아직도 지붕에 길타령인가? 아직도 “언필칭박통(言必稱朴統)”이라니, 한편으로 신기하고 한편으로 왠지 안쓰러웠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많이 흘렀습니다. 새 대통령은 통치스타일도 민주주의교육을 받은 세대의 잣대에 맞게 탈(脫)권위적이고 일처리 방식도 세련됩니다. 정의만 앞세우고 수단이 투박했던 노무현 정권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때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 정권운영에 잘 반영한 듯합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옳은 말을 얄밉게 해서 세인의 지탄이 집중되었던 유시민전(前)보건복지부 장관이 세련된 문화평론가로 변신한 것만큼이나 진보정권의 변화는 신선합니다. 유시민전(前)장관은 개혁을 조급해하며 고의로 싸움꾼을 자처하던 잣대를 버리니 그의 합리적인 인품이 돋보여 세인들이 갈채를 보냅니다. 현 정권의 중심인사들이 가일층 따라 배워야할 대목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문화는 여전히 이중 잣대를 답습 중입니다. 인사청문회나 대외정책에서 격돌하는 여야(與野)의 잣대는 그야말로 고무줄입니다. 여당은 야당일 때 주장하던 잣대를 내평개치고, 야당은 여당일 때 들이대던 잣대를 내몰라합니다. 유일한 잣대는 상대방 주장이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자는 것 같습니다. “언필칭반대(言必稱反對)”로 자기 진영의 잣대만 들이대니 마치 자기 치수만 고수하는 정나라 사람처럼 고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필자는 6.25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58년 개띠로 오늘이 마침 환갑날입니다. 우리 세대는 부모세대의 희생적 교육열 덕분에 고등교육을 많이 받았고, 사회가 교과서대로 굴러가길 소망하며 한 갑자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비합리적인 진영논리라는 잣대가 기승을 부립니다. 교과서대로 여야가 진지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정반합(正反合)의 정치문화를 갈망하나 현실은 백년하청(百年河淸)입니다.

오늘은 자기 잣대를 버리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길 권면합니다. 유시민전(前)장관처럼 자기 잣대를 버리면 진영을 뛰어넘어 일거에 사랑받는 지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구태의연한 잣대로 소음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 새마을노래는 박물관에서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노래로 만나야지 현실을 변혁하자는 구호로 등장해선 듣는 귀가 참으로 거북합니다. 교육이 보편화된 나라답게 우리나라 시위문화도 더 세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낡은 잣대가 소용없을 만큼 세월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장창호 칼럼 보러가기➧장창호의 문화 단상

장창호 칼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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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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