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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35]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기사승인 2017.09.25  00: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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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천재시인에서 졸지에 무능한 시인이 되어버렸다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어느 땐가 치맛자락을 끌어올려 눈시울을 닦아내는 엄마를 보며 나는 정인보의 ‘어머니’ 라는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이강이 어느 강가/ 압록이라 여짜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잘 지었다. 네가 글에 천재적 소질이 있다. 구구절절 딱 지금 모습이다.”

나는 아무 말 못했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사기를 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북 쪽에 대고 시 하나 더 지어봐라.”

“북한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지어요. 직접 봐야 느낌이 오지.”

“야는 그럼 살인하는 소설은 다 죽여보고 쓰더냐. 그래 갖고 글 쓰겠냐”

나는 천재시인에서 졸지에 무능한 시인이 되어버렸다.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엄마. 김일성도 죽었으니까, 김정일만 죽으면 통일 될 거야. 그럼 엄마랑 이모들이랑 금강산 구경 가요. 금강산 가면 멋지게 시 한수 지을 게요."

"야야, 나는 김정일이 김일성보다 더 무섭다. 그놈이 지 아버지랑 달라서 천방지축 망나니라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단다. 전쟁 날까 무섭다."

엄마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전쟁은 나지 않았고,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졌다.

엄마는 곧 통일이 될 것처럼 기뻐했다. 간첩이 대통령이 됐다고, 나라 끝장났다고 걱정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대통령이 통일을 시킬 것 같다"고 했다.

정주영이 이북 사람이라 대통령이 됐으면 더 빨리 통일이 됐을 거라고도 했다. 민간인이 소떼를 그렇게 몰고 간 걸보면, 대통령이 됐으면 실향민을 떼로 몰고 갔을 거라고도 했다.

그 뒤로 엄마는 통일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다. 김정일이 대통령을 오게 한 걸 보니 통일할 생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며,

"둘이 통일이나 의논하지"하고 흥분하기도 했다.

내가 엄마 가슴에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이 아마 그 즈음이었던 거 같다.

"엄마, 우리도 금강산 가자."

"엄마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봤다."

"정말 갈 수 있을까? 안 위험할까?"

"갈 수 있다 잖아요. 나라에서 신변을 보장해주는데 뭘 걱정이야."

"그놈들 말을 믿을 수 있어야지. 어떤 놈들인데"

나는 그놈이 어느 쪽 놈을 말하는지 잠시 헷갈렸다.

"남한 놈, 북한 놈?"

“어느 놈이나 다 한가지다. 내 이래 살 줄 알았으면 거기 가만이나 있을 걸 그랬나 싶다. 강냉이 죽밖에 못 먹어도, 다 같이 못 사니 좀 나을 것 아니가.”

나는 놀라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절대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힘들고 고단한 세월이 드디어 엄마의 사상까지 바꿔 놓은 거 같았다.

얼마나 지쳤으면 빨갱이라면 치를 떨고 몸서리를 치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파랑색인 우리 엄마가 저런 소리를 다 할까 싶었다.

어쨌든 나는 엄마에게 금강산 여행을 꼭 시켜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야야, 꿈만 같다. 거기까지 가면, 나중엔 길주 까지도 안 가겠냐."

엄마가 꿈꾸듯 중얼거렸다.

엄마가 진짜 가고 싶은 곳은 금강산이 아니라 길주였던 거다.

하지만 금강산이라도 밟을 수 있다면 그만큼이라도 어디냐고 했다. 첫 술에 배부르겠냐며. 너무 처음부터 욕심내는 건 아니라고도 했다.

나는 약속을 못 지켰다. 처음엔 아무나 갈 수 없을 정도로 선정이 너무 까다로웠고, 그다음엔 좀 무서웠고, 누구나 갈 수 있게 된 다음엔 돈이 없었다. 모은 돈을 원룸 얻어 독립하느라 홀딱 써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큰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가시고 나니 제일 마음에 걸렸다.

내 소원이었다면 그랬을까?

아무래도 나는 엄마처럼 절실히 금강산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돈이 있다면 좀 더 모아서 북한 보다는 미국 그랜드캐년이나 유럽여행부터 가보고 싶었으니까. 북한도 한국 땅인데, 콧구멍만한 땅덩어리 거기가 거기지 싶었다. 금강산을 간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꿈에도 그리는 소원'의 땅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관광지일 뿐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하고 자꾸 미뤘다.

그 나중에도 엄마는 그 자리에 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급할 게 없었다. 금강산 여행은 시간이 갈수록 쉬워지고 비용도 내려갈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독립해나가고부터 엄마는 나이를 먹으면 빨리 가는 시간처럼 후딱후딱 늙어갔다. 어느 날 와보면 틀니를 했고, 어느 날 와보면 허리가 꼬부라져 있었고, 또 어느 날 와보니 몸이 쪼그라져 아이처럼 조그만 해졌다.

금강산 약속이 내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그러나 생각만 하며 또 한해가 지나갔다. 원룸을 얻어 생활하려니 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둘이 가려면 경비며 이것저것이 부담이었다. 작가일은 하고 있었으나 벌이가 규칙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한복삯바느질을 할 때처럼, 일이 들어오면 커피를 들이켜며 밤을 새가며 했고, 일이 없으면 그동안 벌은 것을 까먹으며 게으른 좀팽이처럼 뒹굴 거렸다. 그래도 어떻게 노력한 결과 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만 금강산 길이 다시 막혀버렸다. 아쉽긴 했지만 돈이 굳었다는 기쁨도 있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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