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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13회] 대바람 소리

기사승인 2019.04.17  09: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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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바람 소리(수필)

전략.
대는 허심청절虛心淸節하여, 줄기 속은 비어 있되 허식이 없고,
단단한 마디는 절도를 지켜 긴장된 정신을 나타내준다.

중략.
거의 우리 한국인은 고향의 마을 대나무 숲 동네에서 자라왔다.
나는 대나무 죽순과 날마다 키를 재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정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어릴 때 동네 서당에서 붓글씨를 배우다가 대나무를 치게 되었던 듯싶다.
대나무를 보면 끼리끼리 가슴과 가슴을 서로 맞부딪치고,
킥킥거리는 동심의 환상의 즐거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대나무의 마디는 위 아래로 호응하듯, 손에 손을 맞잡는 듯도 싶고,
아스라이 이어져 가는 산울림 소리의 메아리 모양인양 시적이라서 더욱 좋다.
대나무 가지는 그 크기에 따라서 마치 사슴뿔처럼 고상하며,
더러는 물고기 뼈처럼 신통하고, 또 까치의 발톱으로도 연상케 한다.
그 중에서도 오필비연五筆飛燕이라하여 하늘을 나는 제비모양이라든가,
삼필비오三筆飛烏로서 까마귀가 놀라서 날아오르는 모양,
사필묘사四筆描寫로는 기러기 내리는 모양, 변화무쌍하여 너무나 다양하기만하다.
얼핏 줄기가 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연해서 바람에 굴하지 않으며,
마디 부분에서만 굽도록 되어 있다.

중략
천지가 백설로 뒤덮인 하얀 눈 속에서 조금도 굽히지 않는 그 푸른색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지조로운 색깔인가. 이 설경의 절정만은 바람도 조용히 잠들어주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저자 김시원 [대바람 소리] 일부-

이 글을 읽고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고도는 무엇일까. 외로운 섬일까?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름이다.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런데 늘 기다리지만 늘 오지 않는다. 우리는 기다린다. 높은 무엇을, 대나무는 땅 속에서 몇 년을 견디다 죽순, 새순으로 땅위에 오른다.

내 어릴 적 우리 집도 뒤 안에 대나무 숲이 있었다. 내게도 대나무는 많은 이야기를 하게한다. 훈장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우고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 시절 보자기를 풀어 헤치면 똑같다.

보헤미안, 고도처럼 떠도시던 할아버지가 외유를 끝내고 돌아오는 짐 보따리엔 반질반질 때가 낀 일곱 켤레버선과 눈깔사탕이 있었다.

김시원 수필가는 지구문학 발행인이다. 높은 연세에도 400명이 넘는 회원을 관리한다. 사돈과 한 집에서 기거하며 아침마다 담소를 끝내고 출근한다. 대단한 이룸이고 성취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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