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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12회] 그래! 얼큰한 감자탕에 한잔 했다

기사승인 2020.12.01  00: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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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형처럼 폐암 걸러 술 못 마시길 바라나?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암병동 823호 입원실.
1호 병상 혼자, 2호 아버지와 딸, 3호 남편과 아내, 4호 나, 5호 형제, 6호 형과 막내 등 십여 명이 함께이면서 각자의 병상을 잘 유지합니다. 환자 모두 50세 이상의 남자들이며, 이들 중 췌장암 환자가 세 명입니다. 나와 또 한 사람은 췌장암 재발 환자입니다.

입원실로 들어오면서 오른쪽 첫 번째 병상 환자는 50대 중반으로, 수술 후 직장암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꽁지머리의 그가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 여행용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입원할 때부터 자꾸만 눈길이 갔습니다. 어쩌면 도예가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 모릅니다.

2호 환자는 병상을 딸에게 내주고 당신은 보조침상에 누워있거나 앉아서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였습니다. 부녀가 나누는 얘기의 귀동냥으로 알았는데, 딸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올해 세 번째의 도전이었습니다. 위암의 아버지 병상에서 공부하는 따님이 꼭 합격하기를 기원합니다.

3호 환자 부부는 종일 티격태격입니다.
마나님 왈 “주말 장사만 하자는 얘기 그만해라.”
서방님 왈 “돈? 벌 만큼 벌었다. 이젠 좀 쉬자.”
해라, 안 된다는 고집 다툼은 결국 초로(初老)가 내일모레인데도 깨소금 사랑이었습니다. 입원실의 모두가 ‘닭살부부’라고 눈총을 줘도 시종일관입니다.

4호 병상의 저는 건너뛰어 5호 병상은 형제의 정이 저리도 깊을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형수를 대신해 형님을 간병하는 동생도 칠십의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말 그대로 지극정성이었습니다. 형님 또한 동생을 대하는 언행 하나하나가 모두 존중이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6호의 큰형님과 막내는 ‘아이고! 구십 돼도 철들긴 글렀다.’ 할 정도로 서로를 안하무인으로 대했습니다. 연령차가 아무리 못 돼도 십 년은 될 상 싶은데 막내는 반말이고, 형님은 말끝마다 ‘네 이놈의 자식’이란 수식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두 사람 때문에 823호 입원실이 속된 말로 뒤집어졌었습니다.

형님 “네 이놈의 자식! 술 마셨지?”
막내 “그래! 얼큰한 감자탕에 한잔 했다.”
형님 “네 이놈의 자식!”
막내 “왜? 나도 형처럼 폐암 걸러 술 못 마시길 바라나?”
형님 “네 이놈의 자식! 당장 집에 가.”
막내 “내일은 형 환장하는 돼지고기김치찌개에 소주 두 병이다.”

간이침대에 벌렁 누워버리는 막내.
이를 지켜보던 823호 입원실의 모두가 칠십 노인의 막내 행동에 그만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보기가, 말투가 민망하면서도 코등이 시큰거려 밖으로 나가자 1호 병상 꽁지머리가 따라나셨습니다. 그도 눈가가 촉촉했습니다.

“형제 우의가 참 깊으신 분들이세요. 부럽네요.”
꽁지머리의 말에 육남매 중 이미 잃은 누나와 동생을 떠올렸습니다. 보고 싶은데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은 여동생은 미국에 있어 몇 년씩 못 보기 예사이고 부천의 남동생 얼굴 보기도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이번 입원도 동생들이 모르는 게 낫다 싶어 알리지 않았습니다.

암 투병이 길어지면서 깨달았습니다.
오로지 스스로 견뎌내고 이겨낼 때 암을 극복하거나 남은여생의 동행자가 될 수 있음을.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럽고, 늘 죽음과 함께 하는 공간 속에도 생존의 길이 있음을. 꽁지머리 암환자도 이를 깨달아 혼자 의연하게 입원하여 직장암 재발 수술을 받았으리라, 그리 믿습니다.

‘가슴 아프게 할 수 없어’

50대 중반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결코 암환자로 믿기지 않는 그는
며칠이 지나도 혼자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계인이냐
물을 수 없어 설마 암 수술 후에도
아무도 안 오랴 빈정거렸는데

대장암 재발 수술 받은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짓말처럼 한 명도 없었다

참 못난 사람이네
어찌 보살피는 사람 하나 없소
타박에 가족 친구 모두 자기를 사랑하므로
가슴 아프게 할 수 없어
해외여행을 다녀오겠다 거짓말했단다

내가 봐도 미쳤어요
그렇죠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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