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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5회] 화장실에 사는 달걀귀신

기사승인 2021.02.17  03: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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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건 역시 귀신도, 짐승도 아닌 사람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어릴 적 나는 한밤중에 화장실 가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평소 놀리기를 좋아하는 작은 오빠가 들려준 달걀귀신 이야기가 어찌나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어쩌다 한밤에 변소에 갈 일이 생기면 겁부터 더럭 났다. 꼭 볼일을 볼 수밖에 없을 때는 어머니든 언니든 앞장세워 내가 볼일을 다 마칠 때까지 변소 앞에 벌서듯 지키게 했다. 그러고도 못미더워 몇 번이고 엄마를 부르곤 했다.

볼일을 다 보고 나와서도 누군가 변소 문을 열고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엄마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는 나를 보고 엄마는 달도 밝고 환한데 무서울 게 뭐 있냐고 했지만, 나는 똥독간에 사는 달걀귀신이 튀어나올까 봐 무섭다고 했다. 내 말이 어이없다는 듯 어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안에서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피식 웃으시곤 했다

“얘야! 달걀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란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내게는 가족이, 동네 어른들이 언제나 든든한 의지처였다. 나를 귀여워해 주고 사랑의 눈길로 대해 주셨던 어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건재한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껏 귀신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아니 귀신이란 것 자체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 귀신으로 인해 해를 입었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본 기억이 없다. 살면서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고,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본 적이 한두 번이런가.

그것도 특히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평생 가슴에 화상으로 남아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무서운 건 역시 귀신도, 짐승도 아닌 사람인 듯싶다. 살면서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고, 상처를 입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살아오는 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에 대한 공포감이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킨 것도 사람이고, 돈 앞에서는 인정사정없이 칼부림을 하는 것도 사람이고, 힘없는 노인을 학대하는 것도 사람이고, 성폭행을 자행하는 것도 사람이고, 잔혹한 살인을 하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것도 사람이고, 시기와 질투에 눈 멀어 남을 해치려는 것도 사람이고,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것도 사람이라.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무사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아서가 아닐까. 영화를 볼 때도 나는 주인공보다는 엑스트라들을 눈여겨본다. 무대 뒤편에서 열연하는 사람들이 있어 주인공이 빛나 보이기에.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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