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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닭 테마콩트 제3화] 닭다리와 커피가 비아그라?

기사승인 2017.01.24  0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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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아예 푹 삭은 파김치다. 됐냐?”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오늘은 다른 거 먹지. 남자에게 좋은 거.”

머리가 하얀 김 회장이 앞서 걷는 박 회장에게 큰 소리로 말합니다. 벌써 세 번째이지만, 박 회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손짓으로 대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뒤에 서너 걸음 쳐져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조 회장은 어디에서 어떤 점심을 먹든 무관심한 표정입니다.

“박 회장! 또 그 집 가는 건가? 순댓국 지겹지도 않아?”

“아니. 오늘은 그 옆집의 옆집.”

박 회장의 의기양양한 말에 김 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보신탕집이 새로 생겼나?”

“그래! 네놈이 좋아서 환장하는 보신탕 먹으러 간다.”

“정말? 와! 박 회장이 보신탕을 다 사고. 세상 뒤집어졌구나. 졌어!”

김 회장이 풀쩍 뛰어 박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뒤처져 쓰적쓰적 따라오는 조 회장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조 회장! 뭐해? 빨리 와.”

활기차게 걷는 두 사람과는 달리 조 회장은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땅만 내려다보며 걷는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인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버리고 가도 그만이라는 걸음걸이입니다. 보다 못한 김 회장이 어디 아프냐고 소리칩니다. 반응이 없자 마누라가 죽기라도 했느냐며 기다렸다 팔을 잡아당깁니다.

“박 회장이 점심으로 보신탕을 산단다.”

“보신탕?”

“응! 보신탕.”

“그게 그렇게 좋으냐?”

“왜? 너도 좋아하잖아?”

조 회장이 반기지 않자 김 회장은 맥이 빠집니다. 조 회장을 꼬드겨 박 회장으로 하여금 탕이 아닌 전골에 소주까지 사게 할 속셈인데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하루가 멀다 만나서 점심 먹는 것도 몇 년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삶의 현장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후 중‧고등학교 동창생에다 세 사람 모두 가까이 살아 수시로 모이다가 아예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름 하여 ‘삼인의리회’. 죽을 때까지 서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명퇴시키지 않고, 정년퇴직도 없는 모임으로 ‘영원하자’란 구호까지 만들었습니다. 호칭도 회장으로 통일했습니다. 그러니까 세 사람이 삼인의리회의 회장이자 회원입니다.

모임 결성 처음에는 자식 놈들이나 마누라 눈치 보지 말고 아예 집을 나와 살자고 의기투합했지만, 사실 그건 실현 불가능한 욕심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러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위엄을 보이자는 맹세는 헛구호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집을 나와도 거뜬히 살 준비는 마누라와 자식 모르게 하자는 계획은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한 달 전, 강원도 강촌의 한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마을에 다녀오기 전 춘천시청에 들러 귀촌의 지원책까지 챙겼고, 인맥을 통해 사전 정보를 입수한 후 현장을 찾았습니다. 강촌 지역을 택한 것은 교통의 편의와 함께 서울에서 가깝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풍치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학창시절부터 정이 든 곳이라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내려와 주위 환경을 살펴본 후 농가를 사들이기로 하고 자연스럽게 구곡폭포를 찾았습니다. 세 사람이 기억하는 구곡폭포는 초입에 초가가 몇 채 있는 오솔길이었는데, 승용차가 씽씽 들락거리고 화려한 카페가 즐비했습니다.

“아니다. 잘못 왔어.”

“그래. 여긴 우리가 올 곳이 아니다.”

“우리가 늙었나? 왜 이렇게 어지럽지?”

사라진 자연 속의 구곡폭포. 도시의 질퍽함으로 가득 찬 계곡의 광경에 놀라 강촌으로 귀촌할 농가 구매도 포기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차창 밖만 내다봤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여 어쩌다 가는 지고 갈래 먹고 갈래 호프집에서 실망을 털어냈습니다.

“한 달 전 그날 말이야. 강촌에 갔다가 호프집에 갔던 날 기억하지?”

김 회장의 말에 조 회장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날 여자가 둘 뿐이라고 우리 모두 일어섰잖아?”

“그랬지. 의리의 우리인데 짝이 안 맞으니 당연한 거 아냐?”

“정말 그럴까?”

김 회장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면?”

“야! 조 회장! 너 끝까지 시치미 뗄래?”

조 회장은 김 회장의 짜증에 피식 피식 웃으며 걸음을 빨리합니다. 앞서 가는 박 회장을 불러 세우더니 귓속말을 합니다. 김 회장이 투덜거렸지만, 들은 척도 안 하고 두 사람은 쿡쿡 웃습니다.

“뭐야 이거? 보신탕집이 아니잖아?”

김 회장이 기절초풍하자 두 사람은 혀를 찹니다. 들어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순댓국집 쪽방을 차지합니다. 김 회장은 식당 문 앞에서 오만상을 있는 대로 잡다가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섭니다.

“그렇게 안 좋아?”

김 회장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박 회장이 불쑥 묻습니다.“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인가?”

“보신탕을 입에 달고 사는 걸 보니 자네 말이 맞는가 보이. 아닌가? 김 회장.” 조 회장까지 합세하자 김 회장이 무너집니다.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고, 웃옷까지 벗습니다. 두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다 축 늘어집니다.

“이 썩어질 인간들아! 아예 푹 삭은 파김치다. 됐냐?”

“푹 삭은 파김치? 어디가?”

“박 회장! 너 친구 맞아?”

세 사람이 함께 비뇨기과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밀려나자 급격히 떨어지는 성욕과 기능에 놀랐지만, 나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던 어느 날 세 사람은 의학의 힘을 빌리자며 비뇨기과에서 진단에 따라 처방받았습니다. 그때 가장 큰 관심사가 발기 약품 사용이었습니다. 비아그라다 뭐다 각종 알약이 제각각 최고라며 떠들지만, 믿을 수가 없어 병원 신세를 진 것입니다.

그날 박과 조 회장은 의기양양, 처방전을 들고 나왔으나 김 회장은 풀이 죽었습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는 그에게는 의사가 사용하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병을 악화시키거나 불행한 일도 당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받자 당황스러웠습니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를 깬다니까.”

김 회장의 탄식에 두 사람은 발기 약품 사용의 효과를 철저히 함구했습니다. 단둘이 있을 때만 낄낄거리며 현대의학의 능력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혹 지나가는 말처럼 김 회장이 요즘 잠자리 좋다며 물어오면 시큰둥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면 늙어서 그걸 너무 탐하는 것도 주책없으니 건강에나 신경 쓰자며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미친놈들! 누가 그 연막을 모를 줄 알아?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얘기할 것이지. 에이! 나 먼저 간다.”

이러던 그가 올해 들어 부쩍 보신탕 타령입니다. 뭐 먹을까? 보신탕. 화곡동시장에 기가 막힌 집이 있다더라. 또 보신탕? 왜? 네놈들은 밤마다 팽팽하니까 보신탕이 싫으냐? 뱀탕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이런 식이었습니다.

순댓국이 나오자 김 회장은 뒤로 물러나 앉습니다.

“난 생각 없다.”

“왜? 속이 안 좋으냐?”

박 회장이 실실 웃으며 김 회장의 염장을 찌릅니다.

“그래? 그럼 술이나 한잔해.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조 회장이 합세합니다. 김 회장은 낮술을 싫어합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도수 높은 빨간딱지 술을 청한 후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갑니다.

“안 먹으며 안주하지 뭐. 또 시킬 것 없이.”

박 회장이 김 회장의 순댓국을 식탁 가운데로 옮겨놓습니다. 그새 화장실을 다녀온 조 회장이 술잔을 건넵니다. 김 회장이 마시든 말든 잔을 채운 두 사람은 열심히 순댓국을 먹습니다. 그 광경에 소태 얼굴의 김 회장은 벽에 기대어 눈을 감습니다. 먹는 걸로 삐쳐 나갈 수도 없고, 밥 다 먹을 때까지 앉아 있자니 속이 뒤틀리고. 진퇴 양단의 한가운데에서 속절없이 성 기능 저하만 탄식하는데 이모의 큰 소리에 눈을 뜹니다.

“순댓국집에 와서 보신탕 시키는 인간이 누구여?”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치며 김 회장을 가리킵니다. 이모는 김 회장 앞에 보신탕 그릇을 놓아주며 혀를 있는 대로 찹니다.

“에그! 그게 시원치 않으면 서방이 아니라 원수지, 원수! 비법 하나 알려 줘?”

이모는 보신탕에 들깨를 듬뿍 넣어주며 헤죽헤죽 웃습니다.

“이년이 그걸 무지하게 밝히잖아. 그런데 서방이 어느 때부터인가 비실이지 뭐야. 그래 늙어서도 금실 좋은, 미국에서 살다 온 큰언니에게 물었지.”

이 대목에서 실실 웃던 이모가 맨입으로 알려주긴 정말 아깝지만, 김 회장의 마누라를 위해 공개한다며 진저리부터 칩니다.

“그거 하고 싶을 때 백숙 닭다리 하나와 블랙커피 한 잔을 마셔. 반드시 두 시간 전에 먹어야 해. 그러면 비아그라 저리 가라야.”

뜻밖의 말에 세 사람 모두 실망하자 이모는 눈웃음치며 덧붙였습니다.

“천구백구십 년대 초 미국발 해외토픽 비법이야. 삶은 닭다리 한 개가, 설탕과 크림이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가 그걸 변강쇠로 만들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늙은 양반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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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 문학 파란풍경 마을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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