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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의 샘터조롱박 25회] 연필 두 자루와 지우개 하나

기사승인 2021.03.04  0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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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학용품

▲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봄이 왔다.
책가방을 멘 연둣빛 새싹 같은 손자녀석이 신발주머니를 들고 통학버스를 기다린다. 책가방 안엔 연필 두 자루와 지우개 하나를 넣은 필통과 급식판과 물통, 죽통 그리고 수저통이 들어 있다.

손자의 유치원 입학 준비물인 연필을 챙기다가 옛 추억 속으로 달려갔다. 날카로운 손칼이나 면도칼로 연필의 껍질을 여러 차례 깎으면 연필심(흑연)이 나온다. 그 연필심을 종이 위에 세우고 사각사각 칼로 밀어주면 뾰족해진다. 그 사각거리는 소리가 소름 끼쳐 종이에 연필심을 눕혀서 갉기도 했다.

칼날이 틀 속에 있어 손을 베일 염려가 없는 연필깎이가 나오면서 날이 드러난 칼은 밀려났다. 여러 가지 모양의 연필깎이가 신기해 구멍에 연필 끝을 밀어 넣고 돌리고, 또 돌렸다. 잘 깎인 연필심이 부러져도 계속 돌렸다. 그렇게 신기했던 연필깎이가 샤프와 볼펜에 밀려 보기 힘든 학용품이 됐다.

연필깎이와 함께 사라진 추억이 하나 더 있다. 옛날 연필심은 질이 떨어져 선명하게 써지지 않았다. 글씨를 선명하게 쓰려면 연필심에 침칠하고 연필 잡은 손가락에도 힘을 주어야 했다. 억센 연필심에 자칫 공책이 찢어질까 조심하지만, 어느 순간 송곳에 찔린 듯 구멍이 나 울상을 짓곤 했다.

이제는 붓, 벼루, 먹, 종이의 문방사우가 무색한 세상이 됐다. 연필과 볼펜 역할을 휴대폰과 컴퓨터가 거뜬하게 하는데 무슨 문방사우가 필요하겠는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고, 원고를 써서 전송하고, 만화도 척척 그린다. 이동 중에도 휴대폰 펜으로 메모할 수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손자의 유치원 입학 학용품을 준비하다가 새삼 놀랐다. 형형색색에 모양도 가지가지, 머리에 지우개까지 예쁘게 장식한 연필에 그저 감탄이다. 연필도 패션 학용품으로 발전했는데 엉뚱하게 몽당연필을 떠올린다. 작디작아진 몽당연필을 볼펜에 꽂아 쓰던 옛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연필과 지우개의 향수가 마치 삶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쓰고 지울 수 있음이다. 잘못 쓴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바르게 고쳐 쓰는 쓰고 지움의 세계.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유행가의 비유가 왠지 민망하다.

인생도 썼다가 지울 수 있다면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실패 없는 인생살이! 내게도 그렇게 지우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연필로 썼다면 다시 지우고 차근차근 아름답게 살 텐데. 아쉽게도 인생은 한 번뿐이다. 지나간 시간에 연연치 말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며 살 일이다.

노경민 작가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노경민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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