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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닭 테마콩트 제8화] 닭발 닮은 그녀의 손

기사승인 2017.02.28  01: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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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고! 두 분 불쌍해서 어쩌죠?”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47년 만의 해후였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이곳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참 많이 닮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면서도 그녀일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길에 며칠 간격으로 들렀지만, 그녀는 단골손님 한 사람 생긴 정도의 눈길이었다. 한번은 넌지시 춘천에 살지 않았느냐고 묻자 천안이 고향이라며 서비스 안주로 땅콩을 가져왔다.

“어쩌면 그렇게 쉽게 속아요?”

그날은 손님이 없었다. 주문도 받지 않고 호프 두 잔과 닭강정을 가져온 그녀가 앞자리에 앉으며 핀잔부터 주었다. 몇 번 들렀지만, 일방적으로 술과 안주를 가져오며 타박까지 할만큼의 관계가 아니었기에 잠자코 쳐다보았다.

“우리 건배해요.”

그녀가 호프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잔을 들었다. 무엇을 건배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주인과 손님의 의미 없는, 그냥 잔을 부딪치는 의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말없이 술만 마시기가 불편하거나 민망할 때 이뤄지는 습관적인 행동으로 잔을 부딪치려다가 멈췄다. 무심코 쳐다본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건배하자고 말할 때의 미소가 사라진 애써 눈물을 참는 표정이었다.

“왜 그래요? 안 좋은 일 있어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그녀가 다시 고개를 저며 잔을 내려놓았다. 한참 동안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가 긴 한숨과 함께 얼굴을 든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저예요. 선옥이.”

선옥이라고?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화가 났다. 한 달 가까이 삼일이 멀다 하고 들릴 때마다 천안 여자로 행세했던 그녀였다. 춘천의 공지천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천안 삼거리와 천호지의 야경을 자랑했다. 춘천시의 사방을 굽어볼 수 있는 봉의산을 자랑하면 그녀는 어린 시절 토끼에게 줄 아카시아 잎을 뜯던 남산의 추억으로 맞섰다.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했던 남산은 천안시민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며 세월의 무상함까지 들먹거렸었다.

처음 그녀를 목격했을 때 심장이 멈춰 죽는 줄 알았다. 늙어서도 옛 연인을 보면 가슴이 터질 듯 뛴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기적이었다.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

47년 전 입대할 무렵 떠난 그녀의 호프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또 한편으로는 혹 닮은 여자를 잘못 본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주춤거리게 했다. 놀라움과 불안의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해 떨어지기 전에 호프집 문을 열었다. 호프 한 잔과 치킨 안주를 시켰다. 생맥주와 치킨을 가져오는 그녀를 살펴보며 심호흡했다. 세월이 흘러 육십이 훌쩍 넘었지만, 그녀가 분명했다. 얼굴에도, 손가락에도 아가씨 시절의 옛 모습이 남아 있었다. 갸름한 턱선에서도 옛날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떻게 하죠? 미안해서.”

그녀가 확실하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고향이 춘천이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춘천은 가 본 적도 없다며 자기가 누군가와 닮았느냐고 되물었다. 그때의 그녀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능청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부모라도 속을 만큼 딱 잡아떼는 연기에 아앗 소리 못하고 물러섰다. 그녀가 분명한데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니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한번은 난전에서 마주쳤다. 그녀가 앞을 가로막으며 홍시 한 개를 내밀었다. 어른 주먹만 한 홍시를 얼떨결에 받아들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실망하셨어요? 내가 그분이 아니라서.”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뜻밖의 해후 설렘에 한껏 부풀었던 흥분이 파삭 깨지면서 현기증까지 밀려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나를 놀리려고 거짓말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홍시를 받아드는 순간에도 그녀가 분명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분을 무척 사랑했나 봐요? 눈빛이 그래요.”

평생을 가슴속에 간직한 여인이었다.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왜 아무 말 없이 떠났는지 그 까닭을 알고 싶었다. 어떤 오해로 말다툼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런 것 하나 없이 갑자기 만남을 거부했고, 얼마 후 이사까지 해 가슴 속 여인이 되고 말았다.

“그분은 어떤 분이었어요?”

난전에서 홍시를 받은 핑계로 다음날 호프집을 찾았을 때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딸과 함께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십 대 후반의 딸은 손님이 많은 밤에만 나온다고 했는데 그날은 일찌감치 나와 일손을 거들었다.

“지금껏 못 잊어 하시니 더 궁금하네요.”

그녀는 아름다운 추억이 없다고 했다. 사는 게 바빠 허둥거리며 한세상 보낸 한심한 할망구라고 했다. 젊은 연인이, 부부가 다정하게 술 마시는 모습은 늘 샘이 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좋은 영감을 만나 젊은 사람들처럼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끝에 그분과의 추억을 들려달라고 채근했다.

“난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아요. 남녀관계는 더 그래요. 이것도 병이죠?”

그렇다고 대답하려다가 삼켰다. 대할 때마다 선옥이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섰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내 입을 열게 하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빗나갔다.

“정말 너무 하시네요. 이만큼 사정했으면 부처님도 돌아앉으실 겁니다.”

마침내 그녀가 포기하고 당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양계장에서 묵은 닭을 사다가 파는 닭장사꾼이라 밥상에 닭고기가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닭똥집과 닭발 요리가 상 한가운데를 차지해 비위를 상하게 했다.

“일 년 삼백육십일을 내내 올라오는 닭고기에 진저리쳤어요. 그런데 저까지 치킨으로 먹고 살고 있으니 평생 닭에서 못 벗어나네요.”

그녀는 치킨의 종류를 나열하다 웃었다.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닭 음식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데 한 가지만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아예 입에 담기조차 싫다고 했다. 아가씨들이 피부미용에 좋다고 너도나도 아우성치지만,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닭발 있잖아요. 닭발!”

아버지 가게에 나가면 커다란 양철통에 노란 닭발이 넘쳐났어요. 크고 작은, 발톱이 날카로운 닭발을 그래도 좀 나요. 식칼로 툭툭 잘라낸, 피 묻은 뼈가 드러난 닭발의 발목은 얼마나 끔찍한 대요.

“닭발 찾는 손님들이 많아요. 왜 그 좋은 안주를 안 파느냐고 짜증을 내는 손님은 제발 오지 말라고 기도해요.”

그녀는 마치 닭발을 뒤집어쓰기라도 하듯 진저리쳤다. 두 주먹을 가슴 앞으로 모은 표정은 말 그대로 오만상이었다. 그 모습에 처음으로 선옥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육십 넘은 그녀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수다를 떨 리 없었다. 선옥은 화낼 때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말의 속도가 평상시보다 빨라지지만, 표정은 조용했다. 속이 상해 울 때에도 눈물 터진 눈을 두 손으로 가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다소곳한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킬 것이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제 말이 심했나요? 하지만 닭발, 그거 혐오식품 맞잖아요? 설마 선생님도 그거 좋아하는 건 아니죠?”

닭발 안주, 좋아했다. 소주나 막걸리 안주로 매콤하게 양념한 닭발만 한 게 없었다. 야들야들한 살을 발라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녀와 마주쳤던 난전에도 양념한 닭발을 족발과 함께 파는 가게가 있었다. 할머니의 양념 솜씨에 반해 단골이 된 지 오래전이었다.

“엄마! 또 닭발 증오예요?”

그녀의 딸이 새로 개발한 양념치킨이라며 한 접시 가져왔다. 강정 크기로 잘라 튀긴 치킨에는 바나나 향기가 배어있었다. 맛도 달콤해 어른이나 아이 모두 좋아할 것 같았다.

“엄마 솜씨예요. 닭을 원수처럼 여기면서도 메뉴 개발은 열심이세요. 앞으로 닭발 튀김도 개발하실 거예요. 그때를 대비해 이름도 지어놨어요. 애증 닭발이라고.”

그녀의 딸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 어머니의 험담을 슬쩍 하는 가운데 칭찬도 곁들었다. 눈이 서글서글한 딸은 어머니가 개발할 애증 닭발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하자 그녀가 막았다.

“쓸데없는 말 말고 일이나 해.”

“선생님! 엄마가 닭발을 싫어하는 이유는 첫 사랑 때문이에요. 첫 사랑!”

첫 사랑 때문에 닭발을 싫어한다?

딸의 말에 그녀는 안절부절못하고 좌불안석이었다. 때마침 손님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 사연을 물어볼 기회를 놓쳤다. 그것이 며칠 전이었다.

“저 선옥이 맞아요. 퇴계동의 김선옥!”

퇴계동의 김선옥이라는 그녀의 이실직고에 반가움보다 화가 났다. 한 달 가까이 감쪽같이 속인 이유부터 따졌다. 47년 전, 그때 왜 아무 말 없이 사라졌는지 그 까닭도 따졌다. 선옥은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딸이 왜, 왜냐고 따지는 나를 가로막았다.

“선생님! 저희 엄마 손가락이 지금도 닭발 같아요?”

딸은 선옥의 두 손 옆에 자기 손을 나란히 놓으며 물었다.

“어때요? 제 손가락도 닭발처럼 생겼나요?”

쿡쿡 웃으며 묻는 딸의 말에 선옥의 얼굴을 쳐다봤다. 선옥은 눈길을 맞받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딸처럼 쿡쿡 웃었다. 웃는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고였다.

“선생님은 닭발 같다는 말 한마디로 첫 사랑을 잃어버리셨고, 엄마는 애증의 닭발 세월을 보냈고요. 에고! 두 분 불쌍해서 어쩌죠?”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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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 문학 파란풍경 마을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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