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오는 날의 젊은 초상이 그립다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어릴 때부터 왠지 빗소리가 좋았다.
배 고팠던 지난 시절, 밤에 듣는 빗소리는 희망의 노래처럼 들려와서 참 좋았었다.
우울한 밤일수록 미래에 대한 꿈도 컸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흠뻑 맞으며 돌아다니곤 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흠뻑 맞으며 뛰어다니는 게 왜 그리 신이 났었는지…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 적 그때가 그리워진다.
비 속을 함께 뛰어다니던 옛 친구들, 비에 젖는 저녁연기, 그리고 옥수수 밭을 훑고 지나가던 비바람의 냄새, 담배연기보다 더 칼칼한 할아버지 기침소리…
어느새 이것저것 따져가며 몸 사리는 나이가 되었어도 비에 얽힌 숱한 사연과 추억 때문일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아직도 빗소리가 좋다.
붉은 능소화가 설레는, 여름비가 쏟아지는 저 창밖으로 나가야겠다.
여름비
까마귀 날아간 칠월칠석 들길에
여름비 내리고
먼 산 안개에 젖어
마을로 가까워오면
촌로의 모자처럼 낮게 걸린 저녁이
출출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젖은 연기처럼 번진다
능소화 담장 위로
몇 조각
그리움 저무는 소리
곰방대 물고 앉은 할아버지 목소리
길 건너 옥수수 밭에는
아직도 쏴아쏴아 여름비 소리
박소향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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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소향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의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